매월 아르케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젠다워커를 소개합니다.
아젠다워커는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고민을 갖고 있는지,

또 아르케에서는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나눕니다.

아르케 멤버이자 『불화와 연결』, 『어쩌다 유교걸』, 『함께 살 수 있을까』를 쓴
작가이자 인터뷰어인 고은(@goeunk1m)이 아르케 멤버들을 인터뷰합니다.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 변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아젠다워커의 이야기가 궁금한가요?
월간 아젠다워커는 매월 넷째 주 금요일 아침 9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여기 사회문제가 있는 현장에 자꾸 찾아가는 예술가 둘이 있다. 시시와 희경은 스스로를 ‘활동가’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활동가와 거리를 두기 위해서가 아니다. 가까이에서 활동가들의 노고를 봐왔기 때문에 차마 같은 명칭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다. 대신 그들은 자신의 영역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시시는 싱어송라이터다. 현장의 이야기를 담는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 이 시대의 새로운 민중가요를 만들고 싶다. 희경은 디자이너다. 기획을 통해 사회문제를 새롭게 디자인한다. 도시에서 공동체를 만들려고 한다.

현장과 가까운 예술가라는 공통점 때문일까. 서로 다른 분야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둘은 인터뷰 내내 서로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다. 말은 계속 빨라졌고, 고개는 연신 주억거렸고, 손은 손뼉을 치느라 바빴다. 둘은 어쩌다 ‘현장을 가진’ 예술가가 되었을까? 이번에 열린 광장에서 둘은 뭘 봤을까? 연대하는 예술가는 어디서 원동력을 얻고, 어떤 때 고단함을 느낄까?

예술의 부질없음과 유용함

고은  두 분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희경  저는 희경이라고 하고요. 도시라는 개념에 관심이 많아요. 사람들이 만나며 굉장히 많은 일이 일어나는 곳이잖아요. ‘도시가 우리를 망칠 수도 있지만, 예술이나 창작 노동이 무언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디자인하고 있어요. 재작년에는 채식 지향하는 분들을 모아서 그분들이 가져오신 재료로 식사를 하고, 그 레시피를 재개발 투쟁 현장 파티에서 선보이는 작업을 했어요. 채식 지향하시는 분들이 고립감을 자주 느끼시는데, 그것도 도시의 구조와 많이 연관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이걸 ‘그래픽 디자인’이나 ‘프로덕트 디자인’처럼 간단하게 말하기가 어려워서 길게 설명했는데요. 요약해서 말하자면 도시 안에서 공동체 만드는 일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시시 저는 시시이고요. 음악을 할 때는 본명인 화경을 같이 사용하고 있어요. 저도 희경님이랑 비슷하게, 소개할 때 말이 갈수록 점점 더 길어지는 것 같아요. ‘나는 가수라고 할 수 있는가. 가수의 정의는 무엇인가. 앨범을 냈어야 가수인가? 그렇다면 나는 평생 가수가 아닐지도.’ 이런 생각을 하는데요. 어쨌든 노래를 만들고 현장에서 부르는 싱어송라이터예요. 연대 현장에서 노래를 부를 때, 음악과 목소리가 필요한 곳에서 쓰임을 다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여러 공간에서 생계와 활동 사이에 있는 수업을 하고 있는 강사 노동자이기도 하고요. 또 아르케라는 이 커뮤니티를 같이 만드는 일도 하고 있는데, 오늘은 아르케보다는 음악하는 사람으로 있어 보겠습니다.

고은  두 분 모두 예술가이신데 현장을 갖고 있으시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예술가가 되었는가 보다도 어떻게 현장을 가진 예술가가 되었는지를 묻고 싶더라고요.

시시  15살 겨울방학에 좋아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없는 감정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처음으로 노래를 만들었어요. 노래를 부르고 듣는 걸 좋아하던 청소년이었죠. 그 후로 18살 때까지는 제 감정이나 제가 말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썼어요. 그러다 19살에 청도 삼평리 송전탑 투쟁현장에 밀양 아리랑 춤을 알려드리러 가게 되면서 음악의 방향성을 새롭게 만나게 된 것 같아요. 국가 폭력의 민낯을 마주하면서. ‘내가 그간 만나온 세상이 너무나 좁은 세상이었구나! 국가가 늘 시민을 지켜주는 게 아니잖아?’ 그길로 며칠을 거기에서 신세지면서 세상을 배웠어요.

매일 밤 문화재 같은 거 하잖아요. 사람도 많이 없는데 문화재라는 이름을 붙여서요. (웃음) 민중가수분들이 먼 길을 찾아오셔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가 투쟁 현장에서 울려 퍼지는 걸 보면서 ‘아, 노래는 이런 데서 쓰여야 되는 거구나’를 느꼈어요. 그때 제가 연극, 뮤지컬을 한창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내가 이 세상을 같이 살아 가지 않으면서 무대 위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게 너무 부질없는 거 아니야?’ 싶었어요. 이런 곳에서 노래하고 노래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야겠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죠. 그 후로 탈핵이나 세월호에 대한 노래들을 자연스럽게 쓰게 됐어요.

희경  저도 마찬가지로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그림을 그렸어요. 학구열이 높은 동네 출신인데, 다른 학원들에는 적응을 못 하고 미술학원만 좀 오래 다닐 수 있었던 거예요. 그때 옆 동네가 판자촌 동네였는데 재개발을 한창 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면서 재개발 조합원분들이 투쟁하는 모습, 같은 반 친구네 집에 무슨 일이 생기는 모습을 봤어요. 그때는 너무 어려서 그게 뭔지 잘 몰랐는데요. 성인이 되고 대학교 옆 동네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진 거예요. 학교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친구들이 알려주는 걸 들으며 이게 어떤 구조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걸 알게 됐죠.

현장에서 너무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많이 봤어요. 사람들을 막 끌고 가고 집을 다 부수고. 그러면서 연필을 계속 쥐는 거에 대해서 회의감이 많이 들었어요. 전시 공간을 화이트큐브라고 부르는데요. 화이트큐브에 모든 게 다 소거된 상태로 그림을 걸고 조각을 보는 게 의미가 없게 느껴지는 거예요. 예술의 유용성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디자인 공부를 하게 됐고, 어찌 보면 디자이너는 기획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기획에는 유용성이 있어서, 여러 문제에 접근하기에 좋겠다 싶었어요.

시시  <그래픽 행동가 모임(GAA)>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거예요?

희경  맞아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 옆에는 이런[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죠. (웃음) 미술 하다가 활동가도 하게 된 친구를 옆에서 보는데, 12.3 쿠데타 이후로 활동가들이 너무 과로하고 있는 거예요. 저는 유용성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했잖아요. 활동가들이 필요한 게 보이고, 또 디자이너들은 디자이너 나름대로 분개한 게 보였어요. 그 사이에 브릿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단체로부터 단체가 활동하며 만든 가치들, 예를 들어 아카이브라던가 티켓, 굿즈를 받고요. 저희는 그분들이 필요하신 그래픽 노동을 대신하며 연대하는 거예요. 제가 직접 디자인한 건 거의 없고요. 조직하고 일이 들어오면 디자이너님에게 넘겨드리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시시  너무 좋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뭔지 모르겠지만, 희경 님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했어요. (박수)

광장, 영원히 바뀌지 않을 줄 알았는데

고은  시시 님도 최근에 ‘이한열 소셜펠로우’에 선정되셨잖아요.

시시  제가 될 줄 몰랐어요. 마감 전날에 아르케 휴식 멤버인 중얼 님이 디엠으로 아르케에 계신 분들 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보내주셨거든요. 앞서 받으셨던 분들 보니까 멋진 활동가분들이시더라고요. ‘나 같은 종류의 활동인들은 안 되겠다.’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머릿속에서 ‘이것도 활동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까지의 성과를 적는 칸이 있었는데 뭘 적어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조직의 성과는 있을지 몰라도 20대에 개인의 성과가 있기는 어렵잖아요. 그랬더니 친구가 ‘지금까지 장애인이랑 청소년이랑 현장에 대한 노래 만든 게 다 활동이지, 대단해야 활동이냐?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도 활동 못 해.’라고 말해줘서 쓸 수 있었어요.

그리고 서류가 됐다는 전화를 받았는데요. ‘이 자체가 나한테는 너무 의미가 있다. 그동안의 활동을 스스로가 인정할 수 있게 된 계기였다. 이거면 됐다.’하면서 손발을 덜덜 떨면서 면접에 갔어요. 면접가서도 멋진 분들과 면접을 본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고 생각했죠. 결국 제가 됐다는 연락도 받은 거예요. 이 시대에 새로운 민중가요를 쓰고 싶다는 얘기를 잘 봐주신 게 아닐까 해요. 이제 활동 지원금을 매달 받으니까 여력이 없어서 못 갔던 단체들에 가서 노래를 해보려고요.

고은  왜 활동가가 아니라 활동인이라고 생각하셨어요? 면접을 본 것만으로도 인정받았다고 생각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시시  제 주변에 시민단체에서 상근활동가로 있는 친구들이 있잖아요. 친구들이 일하는 걸 보면 내가 그 정도로 동일한 뭔가를 하나 싶은 거예요. 나는 이게 좋아서 하는 거기도 하고, 음악을 하는 거기도 하고. 사실 아르케를 만들게 되었던 큰 계기도 거기에 있어요. 활동가라는 이름이 무겁거나 혹은 숭고하게 느껴지는 사람들, 세상을 좋게 만드는 데 관심은 있지만 특정 소속은 없는 사람들이 모이면 또 다른 종류의 활동이 벌어지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래서 스스로도 ‘아젠다워커’라는 이름이 제일 와닿지 않나 싶어요.

희경  저도 시시 님 얘기에 너무 공감해요. 기획해서 파티를 하면 저에게 크레딧이 돌아오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 거잖아요. 현장도 많이 못 가고, 활동가들처럼 실질적인 노동을 계속하는 것도 아닌데 나를 활동가라고 얘기하기가 좀 그렇다는 생각을 해요. 근데 또 그런 고민도 들어요. 연대하는 사람들의 폭이 넓어졌으면 좋겠거든요. <그래픽 행동가 모임>도 느슨하게 연대를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거예요. 이런 부분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저는 모두가 느슨하게 정치에 참여하는 걸 상상하면서 살거든요. 제가 제 프로젝트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회에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이 뭐가 있을까요?’라고 물어보면 많은 분들이 집회나 광장을 잘 못 떠올리시는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 사람들이 집회나 광장에 물리적으로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 같거든요. 그게 너무 긍정적인 것 같아요.

시시  요즘 플로우를 보면서 연대라는 게 활동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사실 개인이 이 집회에도 가고 저 집회에도 가는 게 얼마나 큰 영향력이 있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될 수 있잖아요. 저는 개인으로 다니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한 명 한 명이 모이면 큰 힘이 된다는 게 흐름이 생긴 것 같아서 너무 멋져요. 단순히 연대인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연대인이 곧 활동가다라는 인식이 생기고 있지 않나, 이런 생각도 들었던 것 같아요.

또 이번에 좋다고 생각한 건 우리가 박근혜를 탄핵시키면 많은 게 변할 거라고 믿었는데 그렇게 잘 안됐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이번에는 윤석열이 탄핵된다고 끝이 아니라는 걸 다 알고 있어서, 탄핵 이후에 대한 이야기가 들렸던 것 같아요. 초반에 집회 갔을 때는 화가 나는 발언이나 노래가 나왔어요. 친구들이랑 ’이랑이나 신승은의 목소리는 언제 나올 수 있을까’하고 얘기했는데, 그게 2~3주 만에 된 거예요. 광장은 영원히 안 변할 것 같았는데, 이게 되는구나 싶었죠.

희경  저는 고양되고 기쁜 얼굴을 보면 반대로 슬픈 표정이 생각나요. 단순히 기쁘기만 한 게 아니고 단순히 슬프기만 한 게 아닌, 그런 맥락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고양감이라는 게 맥락이나 서사 없이는 불가능한 지점들이 분명 있잖아요.

시시  국회에서 탄핵안이 의결되는 날, 아르케 사람들과 같이 갔어요. 의사봉이 ‘땅땅땅’하는데 다만세가 첫 곡으로 나왔거든요. 멤버 유랑이랑 눈 마주치자마자 둘 다 눈물이 난 거예요. 희경 님이 말해준 것처럼 기쁜 얼굴 뒤에 늘 있는 슬픔의 서사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이번에는 모두가 프라이드 플래그를 가지고 나왔지만, 그렇게 못했던 수많은 광장들이 너무 많았었잖아요. 박근혜 탄핵 때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고요.

저는 대안학교부터 시작해서 대학도 안 가고 사대보험도 안 되는 직장을 다니고 결혼도 안 하는, 한켠에서 비주류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내재화된 고립감이 있는데요. 이번 광장에서만큼은 내가 여기에 함께 있다는 고양감이 컸던 것 같아요. 자기의 정체성을 숨기고 이곳에 속해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깃발들이 쫓겨나지 않고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는 광장에 내가 있다는 고양감이요.

연대하는 예술가의 오늘 

고은  그럼 이제 광장에서 아쉬웠던 점도 얘기해 볼까요? (웃음)

시시  좋은 것도 많았지만 굳이 꼽자면 집회의 방식이 계속 똑같은 것 같아요. 사회자가 있고, 미리 섭외한 단체 활동가들의 발언이 있고, 가수의 공연이 있고. 엄청나게 큰 스피커와 전광판이 있는 무대에 올라야만 활동을 할 수 있는 게 주를 이루고 있죠. 이번에 여의도에서 집회할 때 더 작은 단위로 공론장도 열고 공연도 있었는데요. 그런 게 메인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이 광장에 나와 있는 것만으로도 고양감을 느끼기는 하지만, ‘그것만 할 수 있는 사람들인가?’ 떠올려보면 훨씬 많은 걸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거란 생각도 들거든요.

희경  저의 활동가 친구들은 일상이 집회와 연대이기 때문에, 탄핵 집회가 열렸을 때 선택을 해야되는 일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평소대로 가던 집회를 갔다는 친구도 있었는데요. 되게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 참여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확대되는 경험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 그런 생각도 했어요. 저는 집단에 소속되어서 연대해 본 적은 없고, 개인으로만 참여했었거든요. 그때 제일 어렵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웃길 수도 있지만, 뻘쭘함이거든요.

고은, 시시  (동시에) 맞아요!

시시  너무 공감해요. 사람이 필요한 작은 현장일수록 거기 있는 사람들이 서로 잘 알고 있잖아요. 그 분위기가 느껴지니까, 여기 있고 싶기는 한데 아는 사람은 없고. 그렇다고 나를 알아봐 주면 좋겠는 건 아닌데. 나도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

희경  저는 심지어 mbti가 E인데도 뻘쭘해요. 사실 어떤 현장은 상황이 안 좋다 보면 그 현장을 고수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당연히 여력이 없잖아요. 그런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고민이 돼요. 덜 뻘쭘할 수 있는 뭔가 없을까? 동네 삼일장처럼, 떡볶이집처럼 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지금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잘 안 떠오르기는 하는데, 나중에 그런 일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고은  두 분은 현장에서 작업하실 때 어떤 순간에 뿌듯하세요?

시시  일차적으로는 노래가 좋다고 해주시면 그렇고요. 두 번째는 연대 현장에서 당사자분들이 이런 노래를 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해주실 때 그래요. ‘내가 이 노래를 만들고 이 공연을 할 수 있어서 너무너무 다행이다. 좋다.’고 생각하죠.

희경  저도 비슷한데요. 재개발 투쟁의 후원 파티에 토크 자리가 있었어요. 그때 세입자 대책위원회의 사장님이 감사하다고, 이거야말로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이라고 이야기를 해주셨거든요. 그게 되게 기억에 남고 아직도 아른거려요. 사실 기획할 때 꼭 뿌듯하지만은 않죠. 그래도 사장님의 말을 들으면 내가 의미 없이 헛발질하고 있던 게 아니구나, 위로가 되고 다음에 뭘 하면 될지 생각해 보게 돼요.

고은  그럼 현장에서 작업하실 때 어떤 어려움들이 있으셨는지도 들어봐야겠어요. (웃음)

시시  노래에 가사가 먼저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이게 시가 아니기 때문에 노래도 좋아야 하거든요. 그 부분이 늘 어려운 것 같아요. 또 성격상 노래를 만들고 들어보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못해요.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 같아요. 자기 PR의 시대에 전혀 맞지 않는 인재상인데, 창작에서는 그런 일이 필수니까요.

희경  대의와 아름다움, 둘 다 챙겨야 한다는 걸 저도 베스트로 뽑고 싶고요. 하나 더 꼽으라고 한다면, 변칙 사항이 너무 많아요. 워크숍에 사람들을 초대하면 연락 없이 안 오는 분도 있고, 오늘인지 몰랐다고 하시는 분도 있고. 누워서 변수를 생각하다 보면 병이 나겠는 거예요. 그걸 즐길 수도 있어야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유연하게 컨트롤할 수 있을지가 앞으로도 계속 마주할 문제일 것 같아요.

시시  저도 너무 공감해요. 공연하러 가면 제가 앰프랑 마이크, 마이크 스탠드만 있으면 된다고 하거든요. 막상 갔는데 작동이 안 돼. 현장 분위기도 내가 생각했던 게 아니고, 행사의 BGM이 되는 상황도 있어요. 한번은 민주노총 집회에 야외 공연을 하러 갔는데요. 옆자리에서 대여섯 분이 치사하게 “귀족노조 해체하라”고 녹음해온 걸 빵빵한 스피커로 무한반복 트는 거예요. 그 상태에서 노래를 해야 되는 거죠. “같이 노래 불러볼까요?” 했더니, 그쪽에서 마이크도 좋은 걸 가지고 왔더라고요. 노래는 무슨 노래냐고, 저보고 집에나 가라고. (웃음) 너무 재밌죠. 그런 에피소드가 많아요.

고은  마지막 질문인데요. 두 분은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으세요?

시시  올해는 이한열 기념사업회의 지원을 받으니까, 여력이 안 돼서 음악 활동가를 못 불렀던 현장에서 노래를 많이 부르고 싶고요. 또 음악이 필요한 곳에서 같이 음악 만드는 워크숍도 해보고 싶고, 지금까지 만들어왔던 노래들도 정리해서 사람들이 쓸 수 있게 만드는 작업도 하고 싶어요. 아 그리고, 저 3월 15일에 공연을 하거든요. 저 혼자서 하는 첫 번째 공연이에요. 제가 만들고 싶은 연대의 음악, 민중가요가 뭔지 궁금하시다면 3월 15일에 ‘슬금슬금’에 와주세요.

희경  예술가 중에 현장에 한두 번 와놓고 현장을 다 아는 것처럼 작업화시키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저는 작업이 선행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우선 어떤 분들과 만났으면 좋겠어요. 관계가 생기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뭔가를 시작하고 싶어요. 다만 한가지 홍보를 하고 싶은데요. 지금 명동 재개발 현장이 대부분 집행됐어요. 현재 서울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거든요. 힘들지 않고 명상할 수 있는, 핸드폰 디톡스 할 수 있는 시간이니까 시간 되시는 분들 있으시면 언제든 제게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르케를 만나다 

고은 시시와 희경에게 아르케란?

시시  저에게 아르케는, 원동력을 주는 곳 같아요. 때로는 내 작업들이 무용하게만 느껴지거나, 혹은 또 반대로 모든 것이 버겁고 뒤늦은 것처럼 느껴질 때, 그 마음에 공감하고 응원을 건네주는 이들이 있는 덕분이겠죠. 세상을 외면하지도, 사회문제의 무게에 짓눌리지도 않게! 해주는 동료들이 제게 곧 아르케입니다!

희경  외로움이라는 단어는 언뜻 듣기에는 사적이고 그다지 정치적이지 않아 보이잖아요? 그런데 아르케 그리고 아젠다워커들을 만남으로써 ‘내가 느꼈던 게 외로움이었구나, 외로움은 정치적일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해주었어요. 정치적으로 외로운 사람들에게 기꺼이 ‘만나서 뭔갈 해보자!’라고 말해주는 아르케와 그 구성원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