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아르케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젠다워커를 소개합니다.
아젠다워커는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고민을 갖고 있는지,

또 아르케에서는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나눕니다.

아르케 멤버이자 『어쩌다 유교걸』, 『함께 살 수 있을까』를 쓴 작가이자 인터뷰어인
고은(@goeunk1m)이 아르케 멤버들을 인터뷰합니다.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 변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아젠다워커의 이야기가 궁금한가요?
월간 아젠다워커는 매월 넷째 주 금요일 아침 9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아젠다워커 상준의 아젠다는 #커뮤니티 #지역 #브랜딩 #마케팅 #문학이다. 상준이 지난 시즌 아르케에서 카피라이팅 클럽을 운영한 건 그의 본업과 관련이 깊다. 그는 대학에서 광고를 전공했고, 졸업 후에 기획, 카피라이팅, 브랜드마케팅 일을 해왔다.

그랬던 사람이 어떻게 아르케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아르케는 그의 어떤 맥락과 만나고 있을까? 여전히 기업과 일하는 그가 아르케에서 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나열된 키워드 끝에 은근슬쩍 자리를 차지한 ‘문학’은 뭘 뜻하는 걸까?

오랫동안 회사를 다녔던 그는 얼마 전 프리랜서가 되었다. 팀을 꾸리려고 준비하고 있는 그는 방향을 탐색 중이다. 내년에는 대학원 갈 생각도 하고 있단다. 마치 나선형을 그리며 언 땅을 뚫고 나오는 봄 새싹 같은 상준을 코 끝은 시렵고 햇살은 따스한 날에 만났다.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관심

고은  아르케에는 어떻게 들어오게 되셨어요?

상준  인스타에서 보고 신청했어요. 지순협도 알고 있었고 활동가의 영역에도 늘 관심이 있었어요.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고, 그걸 위해 활동하는 거잖아요. 그런 분들에 관한 일종의 존중이 있었던 것 같아요. 마침 새로운 것들, 안 해본 것들을 해보자는 생각을 하던 시기이기도 했고요.

고은  활동가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에 들어오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으셨나요?

상준  '아젠다워커'에 공감이 돼서 그러진 않았던 것 같아요. 저는 기업하고 일을 하고 있지만, 종종 그런 쪽 일을 하긴 했거든요. 그걸 아젠다워커라고 규정하니까 활동가처럼 전업으로 하는 건 아니더라도 몇 퍼센트는 아젠다워커로 일한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신청하는 데 주저가 없었죠.

고은  원래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최근에 퇴사하신 회사도 환경문제를 다루었잖아요.

상준  직전 회사에 있을 때도 환경문제에 관심이 원래 있었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그런데 저는 특정 문제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사회 문제에 넓은 관심을 갖고 있어요. 사람들이 살기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쪽으로요. 오히려 그런 문제의식에 대한 공감대가 있으면 빠져들게 돼요.

첫 직장에서 지역과 관련된 일을 했던 것도 회사를 만드셨던 교수님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셨었어요. 지금까지도 지역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을 알고 있고, 그분들의 활동을 좋게 보고 있어요. 그렇다고 제가 지역 문제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건 아니에요. 다른 걸 다 떠나서 생각해도 좀 이상하긴 하잖아요. 지역에서는 젊은이들이 계속 빠져나가고 있는데 이게 괜찮을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서울과 경기권의 모습이 괜찮을까? 그런 느낌 정도를 가지고 있어요.

고은  왜 사회적인 문제에 공감대가 있으면 빠져들게 되는 것 같나요?

상준  기본적으로 사람이 변화하는 지점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문제가 있는 걸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알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고요. 예전부터 콘텐츠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광고를 고르기도 했고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면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야 되는 게 아닐까 해요. 재밌어서든 돈이 되서든요. 그러다 보니까 사회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가는 데도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물건을 팔 때, 이 물건이 실질적으로 좋지 않아도 팔 수는 있거든요. 예전에 텔레마케팅 알바를 해본 적이 있었어요. 보험을 파는 일이었는데, 공부하고 조사하다 보니까 그 보험이 실제로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았어요. 저축성 보험이니까 20년 만기인데, 지금 1억과 그때 1억은 다르잖아요. 화폐 가치는 떨어지니까요.

제가 느끼기에는 일종의 사기 같은 느낌이 있어서, [알고 나니까] 못 팔겠더라고요.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나만의 욕심을 위해서 뭔가 하는 건 잘 안 내켜요.

실질적인 변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고은  첫 회사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

상준  광고회사에서 기획 일을 했어요. 박람회를 하거나 지금으로 치면 팝업 같은 일들을 했죠. 나중에 교수님이 소셜 섹터에 관심을 갖게 되셔서 『커뮤니티 디자인』(2012, 안그라픽스 출판사)을 쓰신 야마자키 료 씨를 초청해서 강연회를 열기도 했어요. 그때 아예 커뮤니티 디자인을 더 공부해서 일본을 갈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죠.

고은  커뮤니티 디자인은 어떤 건가요?

상준  야마자키 료 씨는 공원 설계 같은 랜드스케이프 디자인을 하던 분이셨어요. 이전에도 '커뮤니티 디자인'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그건 료 씨가 주장하는 거랑은 좀 달라요. 공동체에 필요한 걸 디자인하는 거라면 료 씨는 커뮤니티에서부터 출발하는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디자인보다 워크숍이 중심이 되죠.

일본에서 고령화 문제, 저출산 문제, 지역 소멸 같은 문제가 먼저 시작됐어요. 버블경제의 붕괴도 있었고요. 그러다 보니까 건축하는 사람들은 이런 고민이 있었대요. 지금 상황에서 새 건물을 만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나이 든 사람은 많아지고 주민은 줄어드는데 여기에 놀이터를 넣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보통은 공원을 조성한다고 할 때, 자리와 예산을 배정하고 입찰 공고를 올려서 낙찰된 사람들이 만들거든요. 근데 료 씨는 그걸 뒤집어요. 주민들을 모아서 공원을 어떻게 쓰고 싶은지, 평소에는 어떻게 쓰는지에 관한 워크숍을 오랜 시간, 거의 3년 이상 관계를 쌓아서 아이디어를 내게 한 다음에 그에 맞는 건축가를 섭외하는 거예요.

고은  그런 방식이 왜 매력적이라고 느끼셨나요?

상준  당시에 저는 퀄리티에 대한 고민과 동시에 어떤 운동이 적용되려면 제도를 바꿀 필요도 있겠지만, 사용자들이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광고의 목적은 결국 소비자의 변화거든요. 어떤 운동도 결국은 민중을 변화시키기 위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그보다는 가치중심적인 이야기가 더 많아지면 그것과 사람들 일상의 변화 사이에 괴리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례로 일본에 니트 청년들 취업 상담을 해주는 단체가 있었어요. 어떻게 다시 의지를 갖고 일하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곳이었죠. 만약에 '니트에서 벗어나는 법' 같은 강연회를 한다면 주변에 관심 있는 사람들만 올 텐데요. 그 단체에서는 넥타이 매는 강의를 열었어요. 니트라는 단어를 모를 수도 있고, 자기가 그런 상태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강의를 하고 마지막에 단체를 소개하는 거예요. 저는 이게 훨씬 타깃에 맞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르케에서 열었던 카피라이팅 클럽에서도 얘기했는데요. 광고는 기본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상상한 다음에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해줘야 되거든요. 그런데 그런 고민을 안 해본 사람들은 보통 우리의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려고 하죠. 하나만 기억하게 하는 것도 어려운데, 모든 걸 다 얘기하면 사실 아무것도 얘기 안 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 돼요.

우리에게 필요한 구체적인 이야기

고은  상준 님 소설을 쓰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상준  어렸을 때는 도서관에 매일 가서 만화책과 소설을 봤고, 대학생 때는 영화 공부를 잠깐 하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돈을 벌어야 되니까 광고를 택했는데, 대행사에서 대기업으로 이직했더니 처음으로 저녁에 시간이 남는 거예요.

내가 하고 싶었던 걸 배워봐야겠다 싶어서 돌아봤더니, 제일 처음에 좋아했던 게 소설이더라고요. 그래서 소개를 받아서 소설 수업을 들었고, 그 수업에서 만났던 사람들이랑 거의 4년 동안 스터디를 했어요. 그러면서 점점 진지한 마음이 됐던 것 같아요.

고은  소설 쓰는 일은 어떠세요?

상준  재밌는데 점점 괴로워지고 있죠.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배우고 변화한 건 너무 많은데, 그럼에도 독자한테 읽혔으면 하는 마음이 있잖아요. 그 기회를 가지려면 한국에서는 문단으로 들어가야 하고요.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도 고통스럽고,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겠고. 이걸 어떤 식으로 생각해야 되는지가 늘 고민인 것 같아요.

제 주변 분들은 독립출판을 하기도 하세요. 그런데 저는 이상하게 이것만큼은 정공법으로 가고 싶더라고요. 어떤 것들은 마음이 동하면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고은  마케터 상준 님과 소설가 상준 님은 서로 잘 만나고 계신가요?

상준  다른 지점과 연결되는 지점이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광고나 마케팅은 결국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이다 보니까 제 생각을 관철시키보단 사람들이 끝까지 갈 수 있도록 하는 데 더 치중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소설은 온전히 제가 쓰는 거, 띄어쓰기 하나 마침표 하나도 다 제가 찍는 거니까 다르죠. 그런데 이야기를 생각하는 방식이나 구성하는 방식에서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소설을 쓰면서 사람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고은  마케팅 얘기하시면서도 사람이 변하는 지점에 관심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소설에도 그런 게 필요하지 않나요?

상준  맞아요. 그런데 작년에 운 좋게 제 소설이 최종 심사에 들어가서 심사평을 받았는데, 인물 서사가 제자리에 머무른다더라고요. 사실 어떤 면에서는 제자리로 돌아와도 [진짜] 제자리는 아니거든요. 그 과정에서 사람이나 상황이 변하니까요. 근데 [제 소설에서] 변화가 역동적이지 못한 느낌을 주나 봐요. 수업에서 자주 들었던 얘기이기도 해서 제게는 여전히 숙제예요.

그래도 이야기를 잇고 짓는 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보통 정보를 기억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서사를 기억한다고 해요. 그러니까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면 구체적인 이야기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는데, 그걸 간접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고은  일에서도 사람 사이에서도 이야기가 관건이군요. 아르케에 들어오길 망설이는 사람들에게는 뭐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으신가요?

상준  "생각보다 재밌는 사람들이 있어"라고 얘기할 것 같아요. 제가 소설을 쓸 때 상상하는 독자가 동네 친구들이거든요. 기업에 다니면서 월급을 받고, 일주일에 한 번씩 대형마트에 가는 사람들이요. 일반적인 대중과 아젠다워커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변화의 기회가 더 많아진다고 생각해요. 멀리서는 신기하거나 불편하거나 낯설 수 있는데, 그걸 덜어주는 건 사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