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아르케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젠다워커를 소개합니다.
아젠다워커는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고민을 갖고 있는지,

또 아르케에서는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나눕니다.

아르케 멤버이자 『어쩌다 유교걸』, 『함께 살 수 있을까』를 쓴 작가이자 인터뷰어인
고은(@goeunk1m)이 아르케 멤버들을 인터뷰합니다.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 변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아젠다워커의 이야기가 궁금한가요?
월간 아젠다워커는 매월 넷째 주 금요일 아침 9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아젠다워커 하무의 아젠다는 '#생태 #에코페미니즘 #시골살이 #퍼머컬쳐'다. 지리산 인근에 살면서 생태적 삶을 모색하는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아르케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오프라인 커뮤니였다면 만나지 못했을 활동가다.

그가 중심에 두고 하는 일 중 하나는 '여성해방 마고숲밭'이라는 공간을 운영하는 일이다. 닦이지 않은 산길을 굽이굽이 올라가면 생태 화장실과 부엌, 지어지고 있는 누군가의 집 등이 나온다. 모르긴 몰라도 마고숲밭은 멋진 지혜를 가진 이들이 꾸리고 있는 곳인 것 같았다.

하무와 구례의 한 비건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인터뷰하는 내내 오가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한 번씩 고개를 돌려야 했다. 어떤 이들은 하무가 인터뷰한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었다. 어쩌면 지리산 인근이 그에게 큰 의미의 공동체가 되어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라서 만날 수 있었던 지리산 활동가

고은  마고숲밭이 있는 구례에 살고 계신 건가요?

하무  산내 남원에 살고 있어요. 2015년 겨울에 왔으니까, 시간이 꽤 됐어요. 그전에는 서울에 있었죠. 음악을 엄청 좋아해서 인디 레이블에서 일을 좀 했었고, 공연과 페스티벌을 기획하는 일을 배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군대 가기 전까지 페스티벌에서 사무국 스태프로 일을 했어요. 지금은 음악을 안 하고 디제잉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놀러 가고 있어요.

고은  요새는 사진을 찍고 계시잖아요. 최근에 개인 사진전을 여신다고 아르케에서 올려주셔서 보게 됐어요.

하무  사진은 고등학생 때부터 좋아했어요. 원래 친구들 찍는 걸 되게 좋아했거든요. 친구들이 어떤 순간에 아름답게 반짝거릴 때가 있어요. 그 순간을 담는 게 너무 행복한 거예요.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아름답고 좋아서요.

오래 찍긴 했는데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죠. 이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니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퇴직금으로 카메라를 샀어요. 개인전은 처음이었는데, 힘들지만 재밌었어요. 친구들이 많이 와줘서 지지해 주고, 누군가 큰돈을 내주고 내 사진을 사주는 인상적인 경험을 할 수 있었죠.

고은  서울은 어떻게 떠나게 되셨나요?

하무  하던 일을 정리하고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무슨 일을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고요.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라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하다 싶었어요. 군대 다녀와서 동생과 엄마가 먼저 와서 살고 있는 이곳에 온 거죠. 그렇게 쭉 눌러앉게 됐어요.

고은  아르케가 서울에서만 열리는 오프라인 커뮤니티였다면 하무 님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네요.

하무  온라인 베이스로 운영되는 이 커뮤니티가 저에게는 시기적절하게 찾아왔던 것 같아요. 처음 시작할 즘에 같이 활동하는 친구들 말고 다른 활동하는 사람도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서울에서 뭘 한다고 하면 마음이 짜게 식는 게 있어요. 물론 서울에서 하는 활동도 중요하고 소진되어 가며 활동한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잘 안 가는 지점이 있거든요.

고은  온라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건 어떠세요?

하무  이번 시즌에 아르케에 들어왔던 친구가 저한테 그런 얘기를 했어요. 품이 많이 들어서 힘들다는 거예요. 클럽에 들어가려면 타이밍에 맞춰서 신청해야 하고, 올라오는 정보도 계속 체크해야 한다고요. 그 친구는 아마 온라인 기반이 낯설어서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르케에서 사용하는 슬랙이 한국 사람들에게 엄청 익숙한 건 아니니까요. 저는 옛날부터 슬랙을 좋아했어요. 편하긴 하거든요.

고은  아르케의 멤버들을 아젠다워커라고 부르잖아요. 하무 님은 스스로 아젠다 워커라고 생각하는 편이세요?

하무  저는 그 개념이 되게 좋았어요. 활동가라는 말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내가 무슨 활동가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할 수 있는 말이라고 느꼈어요. 그리고 활동가 커뮤니티라고 하면 조직에 속해 있어야 될 것 같고, 흔히 말하는 '활동'이라 할 만한 것들을 해야 될 것 같은데요. 아젠다워커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편하게 이 그룹에 포함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요.

에코페미니즘을 지침으로 삼는 한량

고은  마고숲밭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하무  지리산 게더링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때가 있었어요. 그 팀이 4년 전에 이곳에 오게 됐죠. 밭도 만들고 생태 화장실, 부엌도 만들고 프로그램도 돌렸어요. 지금은 팀이 사라지면서 마고숲밭이라는 공간만 남은 상태예요.

여기서 활동을 지속하고 싶었던 저와 다른 친구 두 명이 주축이 되어서 작년에 새롭게 사람을 모았어요. 올해는 7명 정도 되는 친구들과 같이 느슨하게 연결돼서 이것저것 해볼 것 같아요.

고은  하무 님은 왜 마고숲밭 활동을 계속하고 싶다고 생각하셨어요?

하무  예전에 친구들하고 식당도 하고 그랬거든요. 그러면서 '숲이 있으면 좋겠다', '숲에서 재밌는 거 많이 할 수 있을텐데' 라는 얘기를 진짜 많이 하고 다녔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진짜 숲이 생긴 거죠. 공유지로 만들어갈 수 있는 땅을 구하는 게 되게 소중한 기회라서 잘 살리고 싶은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싶은 일과도 연결되어 있고요.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고 싶어요.

고은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시군요.

하무  저는 그냥 저처럼 사는 사람들, 그러니까 직장 안 다니고 농사 대충 짓고 적당히 작업하고 한량처럼 사는 친구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지금의 사회를 뒤집고 바꾸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마고숲밭에서 하는 경험들로 생태적 연결감을 회복하고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감각, 아니 오히려 이렇게 사는 게 훨씬 더 좋다는 감각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그런 접점이 될 수 있는 일을 계속 만들려고요.

고은  한량이셨군요! (웃음)

하무  그렇다고 하기에는 조금 바쁜 것 같기는 한데. (웃음) 더 많은 사람이 그렇게 되어야 저도 좀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들 빨리 직장을 그만두길 바랍니다.

고은  마고숲밭이라는 이름 앞에 '여성해방'이라는 단어가 붙더라고요. 지정성별 남성이 '여성해방'을 전면에 내세우는 곳에서 활동하는 게 흔한 경우는 아니잖아요.

하무  정작 그때 이름 붙인 친구는 대외적인 활동을 잘 안 해요. 그래서 이상하게 제가 계속 인터뷰하고 다니거든요. 처음 이름 만들 때 같이 있던 친구들은 다 떠났고요. (웃음)

처음 숲에서 뭘 만들 때 제일 중요했던 게 밭을 만드는 일이었어요. 생태적으로 사는 게 뭔지 보여줄 수 있는 공간으로 밭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밭에서 우리 아이덴티티가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밭을 만들던 날 투표를 해서 밭의 모양을 골랐어요.

그때 뽑힌 게 주먹을 쥐고 있는 페미니즘의 심볼을 마구 할미가 감싸고 있는 모양이었어요. 저희 활동에 큰 나침반이 되어주었던 게 에코페미니즘이기도 했기 때문에 '여성해방'을 붙이게 됐죠.

고은  하무 님에게 에코페미니즘은 어떤 의미인가요?

하무  소중하고 친절한 안내자에요. 요즘에는 관계 맺기에 대해 고민하는데요. 사람과의 관계도 어렵지만, 공간 안에서 사람 아닌 존재들과 관계 맺는 방식을 연습하고 실험하고 싶어요. 저희 숲이 3천 평 정도 되는데 사람이 오가는 곳은 1/3 정도 돼요. 나머지는 저희가 일부러 건드리지 않고 있어요. 그때 에코페미니즘은 우리가 뭘 해보면 좋을지, 어떤 방향으로 훈련하면 좋을지, 어떻게 사람들을 초대하고 나눌지에 대해 참조점이 되어주죠.

연결되는 감각을 나누고 싶은 사람

고은  마고숲밭에서 하는 실험이 흥미로워 보이더라고요.

하무  생태적인 삶을 살아보고 싶어 하는 친구들 사이에는 개더링 같은 문화가 있어요. 같이 모여서 특별한 목적 없이 숲에서 지내기도 하고, 공동체 살이를 경험해 보기도 해요. 마고숲밭에도 사람들을 초대해서 숲에서 지내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고은  그 시간은 어떤 시간인가요?

하무 누가 모임을 열고 누가 오느냐에 따라 되게 달라져요. 여행을 되게 좋아하는 친구가 열었을 때는 여행하듯이 살아가는 친구들이 되게 많이 왔어요. 동물권, 페미니즘 활동하는 친구가 열었을 때는 그쪽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왔고요.

결국에는 사람들이 숲에서 새로운 존재들, 내가 사랑하고자 했던 존재들, 지키고자 했던 존재들을 직접 만나고 되어보기도 하는 경험을 해요. 우리가 다른 존재들과 어떻게 같이 살 수 있을지, 어떻게 관계 맺을 수 있을지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을 쌓는] 게 일상적이지는 않잖아요. 연결돼 보는 감각을 느껴보는 거죠.

고은  아르케에 올려주셔서 마고숲밭에서 내신 글을 사서 읽었어요. 거기 보니까 하무님이 하는 일이 제일 많으시다고 소개되어 있더라고요.

하무  그냥 그래 보이는 겁니다. 예전에는 커뮤니티가 수평적으로 굴러가면서도 성취를 이루려면 하고 싶은 사람이 일을 많이 하면 되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좀 하다 보니까 그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 싶어요. 일부러 어떤 사람의 기여도를 조금 낮추는 것도 커뮤니티가 건강하게 굴러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더라고요.

고은  저도 인터뷰 일 하기 전에 인문학 공동체에서 친구들과 팀으로 5년 정도 일을 했거든요. 거기서 제가 일을 엄청 많이 해서 힘들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끝나고 보니까 친구들에게 미안하더라고요.

하무  저도 친구들에게 미안합니다. 제가 욕심을 부렸더라고요.

고은  아르케에서는 해보고 싶은 게 있으세요?

하무  그런 게 특별히 없어서 더 편하게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커뮤니티가 잘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서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고은  이번 시즌에 <친애하는 논/비건 친구들에게, 우리 함께 살 수 있을까?>를 여셨죠. 어떠셨나요?

하무  같이 글을 쓰고 읽는 모임이거든요. 그래서 각자 가진 고민이나 친밀한 사이에서는 오히려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들을 사람들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요. 공감하고 응원하고 지지받을 수 있는 경험을 사람들이 했으면 좋겠다, 거기에 보탬이 될 수 있었다면 그걸로 충분히 기쁘다고 생각했죠.

다음에는 각자 좋아하는 사진을 서로 모방해 보는 클럽을 해보려고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진이 다 다르고 이유가 다 다른데, 그걸 따라가 보면 재밌을 것 같아요.

고은  아르케에 아쉬운 점이나 운영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하무  클럽은 잘 돌아가고 있잖아요. 그런데 아르케 슬랙의 채널에 글 올리는 게 품이 많이 들어가더라고요. 왜 이렇게 어렵지, 홍보만 하게 되네, 하는 생각이 들어서 미안함도 있어요. 온라인에서 이런 게 잘 굴러간다면 나 같이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한테는 되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운영팀에게는 고맙고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