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아르케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젠다워커를 소개합니다.
아젠다워커는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고민을 갖고 있는지,

또 아르케에서는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나눕니다.

아르케 멤버이자 『불화와 연결』, 『어쩌다 유교걸』, 『함께 살 수 있을까』를 쓴
작가이자 인터뷰어인 고은(@goeunk1m)이 아르케 멤버들을 인터뷰합니다.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 변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아젠다워커의 이야기가 궁금한가요?
월간 아젠다워커는 매월 넷째 주 금요일 아침 9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아르케에서는 스스로를 '아젠다워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모두 환영한다. 그래서인지, 어디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호두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그는 동양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철학자이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의 지부장이다.

철학은 세상과 조금 동떨어진 이야기를 할 것 같고, 노동조합은 구체적인 세상에만 관심을 가질 것 같다. 그런데 호두는 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는 대학원생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도 대학원생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는다. 동양철학 공부를 하면서는 시대적인 과제를 직접적으로 만나려고 한다. 철학적으로 노조활동을 하고, (긍정적인 의미로) 세속적인 동양철학을 시도한다.

지금 그는 노조활동으로 바쁘다. 몇 년간 노조는 비대위 체제였다. 호두는 오랜만에 선거로 뽑힌 지부장이고, 아직 과업이 많이 남은 노조의 명맥을 잇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의 임기는 내년 상반기에 끝난다. 내년에 호두의 동양철학 클럽이 열리기를 함께 기다려 보자.

북한학에서 동양철학으로 

고은  대학생 때도 동양철학을 전공하셨어요?

호두  학부는 북한학을 공부했어요. 재밌어 보이더라고요. 어렸을 때 이산가족 상봉 프로그램을 봤던 기억이 강렬하기도 했고요. 어떻게 하면 한반도에 평화 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북한학은 응용 학문이더라고요. 정치, 경제, 사회를 다 공부해요. 제가 사회학 베이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경제학 베이스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철학을 복수 전공했죠. 원래는 정치 철학을 하고 싶었거든요.

고은  그런데 어쩌다가 철학, 그중에서도 동양철학 쪽으로 전공을 틀게 되셨어요?

호두  수업을 듣다 보니까 철학이 더 잘 맞는 것 같았어요. 서양철학은 잘 안 맞았고 잘 못했어요. 많이 혼났고요. 언어철학에서 많이 느꼈는데, 서양철학은 일단 다 쪼개고 보더라고요. 분해한 뒤에 정의하고 다시 쌓아 올리는데, 그게 우리의 현실과 어떤 관련이 있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동양철학은 윤리나 실천 문제가 항상 붙어있잖아요. 그런 게 매력적으로 느껴졌죠.

고은  동양철학 할 때는 덜 혼나셨어요? (웃음)

호두  동양철학은 듣는 학생 수가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서 다녔어요. (웃음) 서양철학을 하려면 영어나 독일어를 해야 되는데, 그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요.

고은  동양철학에는 한자가 있잖아요.

호두  그래서 고생을 되게 많이 했어요. 지금도 고생 중이기는 한데요. 한자를 싫어하거든요.

고은  그럼에도 동양철학 대학원에 가셨다니, 되게 큰 결심을 하고 가신 거였겠어요.

호두  처음에 집에 얘기를 못 했어요. 철학으로 먹고살겠다는 얘기를 도저히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때는 북한학으로 대학원 갔다 그랬죠. 동양철학으로 취업하기가 쉽지 않아요. 대학에 철학과가 많이 없고요. 동양철학 자리는 더 없어요. 대중적으로 수요는 있는 것 같은데, 대학에서는 니즈가 없어요. 대학 시장에서는 거의 처참한 수준이죠. 

그래서 강사 자리가 없고요. 학교에 장학금 체계가 잘 되어 있다거나, 국가의 지원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주변에 공부를 그만둔 박사 선배들이 너무 많아요. 아르바이트 병행하는 사람도 너무 많고요. 제가 이번 달에 논문 두 편을 게재했는데, 게재료가 한 편에 20만 원이에요. 그런데 그 돈이 없어서 논문을 못 쓰는 선배들도 있어요. 그럼 잘 사는 사람들만 대학원에 남게 되는 거죠.

고은  아…. 왜 그렇게 되는 걸까요?

호두  모든 건 신자유주의 때문인 것 같은데요. (웃음) 돈 되는 학문이 잘 나가죠. 기초 학문은 거의 보호가 되지 않아요. 대학도 취업률이 높은 과만 지향하다 보니까 철학은 많이 없어지고 있는 추세인 거죠. 무전공 입학을 도입하면 더 심해질 것 같아요.

고은  동양철학에도 여러 종류가 있잖아요. 유가에 관심을 갖게 되신 이유가 있을까요?

호두  다른 동양철학이 인간을 부정한다는 건 아니지만, 유가(공자로부터 시작된 동양철학 학파의 하나)는 인간을 되게 긍정해요. 사람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구를 가르치려고 하거든요. 사람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부분이 너무 좋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모두가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유가가 사회를 중시하고 사회참여적이기도 하고요.

고은  대학생들에게 동양철학의 매력에 대해 설득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뭐라고 하실 것 같으세요?

호두 꼰대 같을 수도 있겠지만요. (웃음) 이거는 뭐랄까, 우리의 문화적 심성이라 별수 없다. 아무리 공자, 맹자가 진부하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더라도, 우리의 세계관을 설명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전통철학이 아닌, '이런' 철학

고은  한국이 동양이기는 하지만, 요즘은 서구화가 많이 됐잖아요. 그럼에도 우리가 가진 심성이 동양철학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호두  아무래도 서양철학과 정서적으로 조금 다른 것 같거든요. 외국에서 유학한 친구들이 다시 한국에 들어와서 느끼는 안도감 같은 건데, 뭐라고 해야 될지 잘 모르겠네요. 없는 걸까요?

고은  사실 저는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웃음) 예를 들면 코로나가 처음 퍼졌을 때, 한국인이 마스크를 잘 써서 세계적으로 이슈가 됐잖아요. 그때 해석이 분분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국뽕으로 봤고, 어떤 사람들은 국가 말을 너무 잘 듣는다고 비판적으로 보기도 했어요. 저는 그런 순간에 공동체에 대한 감각이 나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그걸 동양철학으로 해석해 주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때뿐만 아니라 사회 이슈에 대해 동양철학적인 접근이 잘 안 보이는 것 같아요. 우리 문화가 어디 기댈 데가 없다는 느낌이랄까요.

호두  맞아요. 근데 저는 그게 연구하는 사람들 탓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끼리 연구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가 있었을 때 그걸 유가철학으로 해석한 사람이 있었나, 하면 거의 없거든요. 우리가 비극을 어떻게 철학적으로 봐야 할지 얘기하지 못했어요.

고은  왜 얘기를 못 한 걸까요?

호두  지금도 학계에 논문은 많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사회적 문제의식을 가진 논문이 적어요. 제가 연구자 모두를 대표하지는 않지만, 학계가 보수적인 것 같기는 해요. 전통철학을 해야 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현대적 시류에 편승하는 건 철학이 아니라고요. 저는 현대적인 적용도 추구해야 되지 않나, 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물론 진리탐구도 필요하죠. 그래야 학계의 발전이 있는 거니까요. 하지만 그런 거 하는 사람도 있고, 이런 거 하는 사람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런 걸’ 하면 공부 열심히 안 하는 사람이 되거든요. 저는 대학원생노조도 하니까, 공부 안 하고 밖에만 돌아다닌다는 얘기를 듣죠.

고은 님이 쓰신 책 『어쩌다 유교걸』의 문제의식과도 비슷한 것 같아요. 요즘 같은 시대에 반페미니즘적일 거면 우리가 뭐 하러 유가철학을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고은  저도 페미니스트로서 유교를 어떻게 만나야 좋을지 고민이 많았어요. 유가가 가부장제의 원흉이라고 여겨지고 있으니까요. 유가를 전유할 수 있을까? 여전히 고민이 많죠. 호두 님은 동양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으셨잖아요. 최근에는 어떤 연구를 하셨어요?

호두  이번 달 게재에 통과한 논문이 하나 있는데요. 피해자에게 이상적인 내러티브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노출이 심한 옷은 입으면 안 되고, 사건이 발생한 직후에는 적극적으로 피해 사실을 소명해야 되고. ‘피해자다움’이 강요와 억압의 수단으로 쓰이잖아요. 그런 문제를 동양철학으로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임금은 임금답게, 부모는 부모답게, 자식은 자식답게’를 정명론(正名論)이라고 하는데요. 『논어』에 나오는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에요. 이름과 실재가 일치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지금은 통상적으로 이름에 따른 실재가 이상적으로 정해져 있고, 우리가 거기에 맞춰가야 된다는 식으로 많이 쓰여요. 그런데 저는 정해진 것에 맞춰야 할 필요가 없다고 봤어요. 오히려 정명론을 통해 피해자라는 이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썼죠.

고은  그렇게 보면 뭐가 달라지나요?

호두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보다는 공동체와 피해자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볼지가 관건이 되는데요. 확실한 건 공감과 연대를 기반으로 접근해야 된다는 거예요.

고은  앞으로는 어떤 연구를 하고 싶으세요?

호두  요즘에는 기술 철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21세기가 기술의 시대인데 우리가 기술에 대해서 한마디도 못 하고 있네, 라는 문제의식이 있었거든요. 최근에 그에 관한 논문을 한 편 썼어요. 인공지능 윤리원칙의 한계를 유가철학이 보완할 수 있을까에 관해서요.

처음 논문을 냈을 때 반응이 되게 안 좋았어요. 기술철학에 대해서 유가철학이 어떤 말을 할 수 있냐고요. ‘내 논문이 그거에 대해 말한 거였는데, 논문을 안 읽고 평가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고쳐서 다른 곳에 냈더니 운이 좋게 게재가 됐네요.

세상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서 공부해요 

고은  학계가 보수적인 면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얼굴까지 다 드러내고 대학원생노조 지부장을 하게 되셨어요?

호두  글쎄요. 저는 철학하는 사람이 실천과 결부되었으면 좋겠어요. 공부도 이 세상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서 하는 거거든요. 철학하는 사람들이 그걸 제시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래야 공부에 의미가 좀 있지 않나 싶어요.

박사논문을 정도전에 관해 썼는데, 그 사람이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가 저에게는 되게 중요했어요. 정도전의 목적이 뭘까를 추론해 가는 과정이 너무 재밌었죠.

고은  철학에 세상을 바꿀 힘이 있을까요?

호두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안 그러면 그냥 훈고학(경전 그 자체의 해석에 집중하는 학문) 하는 사람이 되니까요. 노조를 하다 보면 느끼는 건데, 우리가 뭔가를 요구하려면 우리도 그만큼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모든 철학이 그럴 필요는 없지만 그런 힘도 있어야 되지 않나, 생각하는 거죠.

고은  대학원생은 학생이면서 노동자이기도 하다, 그런 글을 봤어요. 보통은 학생이거나, 노동자이기만 할 것 같은데 대학원생은 그렇지 않은가 봐요.

호두  대학원생이 조교나 간사 노동을 하거든요. 그런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어요. 임금을 주는 대신 등록금 면제를 해주는 곳은 많이 주는 학교에요. 보통은 장학금을 받아요. 월 30만 원씩 받는 친구도 있어요. 일은 행정직원처럼 월요일부터 금요일, 9 to 6로 하면서요.

근로계약서를 안 썼으니까 최저임금 적용을 안 받는 거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학교가 몇 군데 없어요. 근로계약서 작성을 요구하면 대학원생은 학생이라서 근로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럼 우리에게 사물함은 하나씩 줘야 되는 거 아니냐고 하면, 무슨 학생이냐 조교지. 그런 식인 거죠. 우리 스스로도 인식 개선이 필요해요. 노동자라는 개념이 잘 없어요.

교수와의 관계에서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요. 교수가 졸업시키지 않겠다고 하면 졸업을 못 해요. 그래서 교수를 보조하는 노동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은 거죠. 업무 범위나 시간도 정해지지 않고 애매하고요. 이런 문제들을 순전히 교수의 인격에 기대야 해요. 저는 저희 교수님 인성이 좋았기 때문에 운이 좋아서 졸업을 빨리하고 착취를 당하지 않았어요. 마치 랜덤 뽑기 같죠.

고은  대학원생들의 처우가 너무 열악하네요! 해외 대학원생들은 어떤가요?

호두  해외에는 장학금 제도가 잘 되어 있어요. 생활비도 주거든요. 조교 노조도 잘 되어 있고요. 파업도 많이 해요. 저희도 파업을 할 수 있도록 나아가는 게 목표예요.

연구도 노동인데, 그런 인식이 학계에 전반적으로 형성되어 있지 않아요. 톱다운에 기대는 방식이 이 구조를 만들어 오지 않았나 싶어요. 요새는 교수들도 착취를 당하고 있어요. 연구 실적을 무리한 수준으로 강요받거나, 채우지 못하면 월급이 깎이기도 해요. 그런 구조 속에서 대학원생은 더 갈려 나가는 거죠.

고은  다른 이야기지만, 아르케에는 어떻게 들어오게 되셨어요? 철학과 대학원생이자 노조 지부장이 아르케에 있다는 게 멋지게 느껴져요.

호두  지식순환사회적협동조합의 유정 이사장님을 통해서 알게 됐어요. 근데 너무 멋있는 거예요. 제도권을 거치지 않는 용기 있는 활동들이요. 그리고 또 젊은 분들이 모여 계신다고 해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활동하면서 제 또래 만나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바빠서 아직 한 번도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 했어요. 만나 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고은  호두 님이 유가철학에 관한 클럽을 열어주시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저부터도 듣고 싶네요.

호두  그러게요. 하면 재밌을 것 같아요. 지금은 노조 일이 은근히 많아서요. 내년에 임기가 끝나면 한번 열심히 준비해 보겠습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