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아르케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젠다워커를 소개합니다.
아젠다워커는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고민을 갖고 있는지,

또 아르케에서는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나눕니다.

아르케 멤버이자 『불화와 연결』, 『어쩌다 유교걸』, 『함께 살 수 있을까』를 쓴
작가이자 인터뷰어인 고은(@goeunk1m)이 아르케 멤버들을 인터뷰합니다.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 변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아젠다워커의 이야기가 궁금한가요?
월간 아젠다워커는 매월 넷째 주 금요일 아침 9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한 인물의 정체성에 관해 듣게 되면, 자연스레 그 사람의 세계를 상상하게 된다. 우리, 이 사람의 세계도 한번 상상해 보자. 시를 쓴다. 기독교인이다. 페미니스트이고, 퀴어이며, 베지테리언이다. 풍물패에서 활동하고, 공동체 하우스를 꾸리고 있다. ⋯.

이 정체성들은 샬롬의 세계에서 복잡하게 뒤얽힌다. 샬롬이 쓰고 났더니 사람들이 그것을 ‘퀴어 시’라고 불렀다. 나의 마음을 쫓아갔더니 누군가가 그것을 ‘해악’이라고 불렀다. 그의 자연스러운 행동에 특수한 이름이 붙고, 그의 세계 한쪽에서는 다른 한쪽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울하고 분노하고 무서워한 시간이 그런 그를 ‘퀴어한’ 사람으로 빚어냈다. 샬롬은 그런 속에서도 ‘그래? 그럼, 본격적으로 퀴어 시를 한번 써보지 뭐.’ 하는 사람, ‘그래도 뭐 어쩔 거야, 이미 내 주변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가득한데.’ 하는 사람이다.

기독교인, 동시에 오픈리퀴어

고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샬롬  이 일 저 일을 해서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힘든데요. (웃음) 남들이 들으면 되게 정신없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남들에게 저를 잘 설명해 주고 싶은데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고, 제 안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어요.

고은  사람들에게 정신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떠세요?

샬롬  정신없는 게 다는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이 저를 걱정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 같기는 해요. 일을 벌여놓다가 몸이 상할까 봐요. 그런데 저는 그걸 멈출 수가 없어요. 이 삶에 적응하려고 노력했고, 적응도 했어요. 어느 정도 감당 가능한 수준까지 하고 있죠.

그리고 이 모든 활동을 통해서 얻는 인사이트가 많아요. 시간이 흐르면서 제 안에서 정리가 되거든요. 아주 달라 보이는 활동이지만 제 안에서는 연결되죠.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는 제가 활동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할 수가 없어서 좀 아쉬워요.

고은  샬롬 님 안에서 중요하게 연결되는 활동들은 어떤 게 있나요?

샬롬  회사에 다니고도 있지만, 주요하게는 세 가지 활동을 하고 있어요. 올해 풍물을 배우게 됐고요. 제가 가장 되고 싶은 건 시인이에요. 또 교회를 다니고 있는 기독교인이기도 해요. 작년 한 해 동안은 제가 하고 있는 기독교 동아리의 간사가 되고 싶었어요. 회사 일을 하면서도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야. 나는 궁극적으로 다른 일을 할 거야’ 생각하며 지냈었는데 결국 못 하게 됐어요.

못 하게 된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제가 오픈리 퀴어라는 부분도 배제할 수 없거든요. 저희 동아리가 한국에서는 꽤 열려 있는 편이고, 직접 관계를 맺었을 때는 저를 받아들여 줬는데요. 간사가 되는 건 또 다른 이야기더라고요.

고은  기독교인이자 오픈리 퀴어로 살아가는 건 어떠세요?

샬롬  원래는 대형 교회를 부모님과 다니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설교가 이상한 것 같아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동네 교회에 다녔거든요. 제가 선택한 교회여서 더 열심히 다녔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찬양 인도를 맡으면서 공부 안 하고 맨날 성경 읽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성인이 되어서 정신 차리고 보니까, 심각하게 빻은 곳이었던 거예요.

제가 학교에 입학했을 때 페미니즘이 리부트되던 때였어요. 맨날 여성혐오범죄를 생각하면서 ‘이렇게 살아봤자 뭐하나. 나 하나 살아도 어떤 여자들은 계속 죽고 있는데 말이 되나.’하고 있었죠. 그런 상태에서 21살 때 정체화를 하게 되면서 ‘퀴어혐오까지 받아들여야 되는구나’ 싶어서 너무 힘들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심한 우울증 상태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교회에서 동성애 혐오 발언들이 나왔어요. 제가 그런 데 관심 있는 것 같으니까 모임에서 한 언니가 동성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당황했지만 뭐라고 말을 했는데, 그 직후에 저보다 나이가 많은 남성 조원이 “나는 동성애 하는 새끼들을 용납할 수 없어”라고 했어요. 너무 당황했죠. 회피하고 싶어서 정확하게 못 들은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고은  세상에, 두 귀로 직접 듣고도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을 것 같아요.

샬롬  교회 담임 목사가 어느 날은 여자는 다 보여주면 안 된다고, 첫날밤에도 다 보여주면 안 된다는 말도 했어요. 제가 점점 교회에서 시들시들해지니까 전도사님이 면담 신청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죠. “교리적으로 나랑 맞지 않는 것 같다.” 제가 다니던 교단이 여성이 목사를 할 수 없었거든요.

전도사님이랑 막 싸웠어요. 책을 읽어보시겠다고 하셔서 추천을 몇 권 해드리고, 다음에 만나서 책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정신이 나갈 것 같았죠. 결정적으로 교회에서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처음 퀴어퍼레이드에 다녀오고 첫 타투도 했을 때였어요. 제가 다녀왔다는 걸 듣고 전도사님이 설교 시간에 동성애와 타투가 죄라고 하더라고요.

고은  아⋯. 마음을 많이 쓰던 공동체였는데, 그곳에서 거부당하는 경험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샬롬  그런 상태에서 제가 말할 수 있는 곳은 학교에 있는 기독교 동아리밖에 없었어요. 너무 우울하고 힘들었기 때문에 계속 말했거든요. 그런데 그 얘기를 다 들어주고, 더 화내주고, 제 잘못이 없다고 얘기해줬어요. 교회에서는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여기서는 제 케이스가 처음인데도 잘 받아주려고 했죠. 그런 게 당시의 저를 살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동아리를 하면서 저를 많이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됐어요. 이 동아리가 이상할 정도로 너무 좋고 함께하고 싶더라고요.

너는 무서워 하면서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

고은  그래서 기독교 동아리의 간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셨을까요?

샬롬  좀 희한한 계기가 있었어요. 기독교 동아리에서 커밍아읏을 했을 때 문제가 생겼었어요. 그런데 저희 학교 간사님이 그 얘기를 저에게 하면서 엄청 울더라고요. 간사님이 되기 전에도 친했던, 같은 학교에 다닌 언니였거든요. 저를 보호해 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고, 저에게 이런 소식을 전해야 된다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던 거예요.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보고 싶었던 예수님의 사랑이 이런 건 거 같더라고요. 감동을 받았죠.

고은  간사를 못 하게 될 것 같다는 걸 확실하게 알게 되셨을 때는 마음이 어떠셨어요?

샬롬  진짜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아직도 제 안에서 해결이 잘 안되는 것 같고, 그 생각 자체를 회피하게 돼요.

제가 들었던 설교 말씀 중에 광인 이야기가 있었어요. 어떤 마을에 광인이 귀신에 들려서 마을 사람들이 배척했대요. 그런데 예수님이 그 사람을 만나서 귀신을 다 쫓아내서 멀끔해진 거죠. 그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해서 당신을 따라가겠다고 했는데 예수님이 막거든요. 따라오지 말고 남아서 마을 사람들한테 이 이야기를 전하라고요. 그게 되게 와닿는 거예요. 저를 막는 것 같더라고요. 왜 따라오지 말라고 하시지, 하면서 너무 슬퍼서 울었어요.

그런데 성경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상상을 한번 해봤어요. 왜 광인에게 귀신이 붙어있었을까. 무당과 같은 역할을 했을 수도 있고, 귀신이 억울하게 죽은 영혼이었을 수도 있고. 또 저의 선생님이신 이영주 시인의 <광인 마그네틱>이라는 시가 있어요. 광인을 끌어당긴다는 뜻인데요. 그런 것들을 연결되어 보이더라고요.

고은  샬롬 님과 광인 사이에 어떤 접점이 있다고 느끼고 계시는 걸까요?

샬롬  광인이라는 존재 자체가 소수자성을 가지고 있다, 불온하고 경계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지점이 저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는 것 같고요. 제가 퀴어이면서 기독교인인데, 보통은 둘 중 하나를 포기하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전 둘 다 갖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 그 경계에 서 있기도 해요. 한 곳에 온전히 속하지 못한다는 기분도 들지만, 오히려 경계에 있어서 더 많은 걸 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쪽에서 봐도 좀 이상한 사람이고 저쪽에서 봐도 좀 이상한 사람인 거죠. 기독교 동아리에 커밍아웃했을 때, 물론 그전에도 퀴어는 있었겠지만 커밍아웃을 한 건 제가 처음이었던 거예요. 반응이 가지각색이었는데, 제 존재 자체가 남들에게 받아들이기 어렵고 불편하게 해서 질문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작은 존재이지만 존재 자체로 균열을 낼 수 있는 거죠. ‘퀴어하다’는 말 자체도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잖아요. 실제로 그런 존재로 살아가면서 주변 사람들의 역동이 많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고은  여성혐오와 퀴어혐오를 같은 시기에 받아들이면서 많이 우울했던 시기가 있었다고 하셨잖아요. 그 이후로 생각이 바뀌신 걸까요?

샬롬  노력을 통해 저를 되게 많이 긍정하게 됐어요. 좀 더 자신감을 갖고, 더 밀고 나가는 거죠. 사실 저는 항상 밀고 나가긴 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 구절이 안미옥 시인의 <생일 편지>에 있어요. ‘발이 더 무거워졌다. 그만 두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 너는 무서워 하면서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 /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이게 너무 저 같은 거예요. 저는 안 무서워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되게 금방 쫄고 간도 작아요. 수업 땡땡이도 못 쳤어요.

그래도 할 말은 해야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맨날 심장 쿵쾅쿵쾅거리고 ‘쟤가 날 어떻게 생각할까?’ 해요. 그래도 뭐 어쩔 거예요. 이미 내 주변에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득한데. 부모님이 저를 받아들인 것도 큰 자원이 됐어요. 우리 엄마 아빠가 괜찮다는데 뭐 어쩔 거야. 그리고 이런 상태인 제가 더 말을 많이 하고 다녀야 말하지 않는 친구들도 절 보면서 힘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나를 살리는 시 읽기과 시 쓰기 

고은  기독교인이고 오픈리퀴어이지만, 동시에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하시죠. 이 세 가지는 샬롬 님 안에서 어떻게 연결되고 있나요?

샬롬  처음 페미니즘을 알았을 때 하나님을 멀리했어요. 트위터에서 봤던 것 같은데요. 예수님은 폭력적인 상황에서 무력으로 한 번에 끝내는 게 아니라, 거기에 뛰어들어서 그 사람과 같이 십자가를 지고 옆에서 울어주는 존재라는 거예요. 그때는 그게 화가 났어요. 그냥 이 상황을 끝내줬으면 했거든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런 무력한 예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무력한 모습이어야 약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나중에는 그게 제가 기독교 신앙을 잃고 싶지 않았던 이유가 됐어요. 성경에서는 예수님이 항상 사회적으로 이상하거나 별로라는 시선을 받는 사람들과 밥도 먹고 함께 다녀요. 사실 기독교 신앙에는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하는 모습이 있는 거죠.

그런 지점에서 문학도 소수자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남의 목소리를 입어서 발화할 수 있으니까, 그 사람이 가진 아픔을 해소하고 나눌 수 있는 것 같거든요.

고은  문학 중에서도 왜 유독 시가 좋으세요?

샬롬  이게 설명할 수가 없는데요. 9살 때 용돈을 받고 처음 구매했었던 게 윤동주 어린이 시집이었어요.

고은  정말요? 초등학생 때 누군가의 권유나 강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시집을 사셨다고요?

샬롬  뭔 내용인지 모르겠는데 그냥 재밌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엄마가 작가는 돈을 못 버니까 취미로 하라고 하셨어요. 그게 무의식 깊이 자리해서 클 때까지 작가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죠.

그러다가 한 4년 전쯤부터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문보영 시인의  『일기시대』에 그분이 어떻게 시인이 됐는지에 대한 내용이 있어요. 술에 취한 채로 시 쪼가리를 봤는데, 글자가 꼬불꼬불하고 뭔 말인지 모르겠는데 엄청 멋있고 재밌다고 느꼈대요. 그래서 시를 공부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거를 보고 뭔 말인지 몰라도 좋다고 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시가 그냥 너무 좋아요. 시를 읽을 때, 뭐라고 표현해야 되지, 어떤 구절을 만나면 그게 제 심장을 만지고 가는 것 같을 때가 있어요. 내가 이거 덕분에 좀 살아 숨 쉬고 있구나, 내 숨구멍이구나, 싶어요. 그래서 한동안은 출근 지하철에서 시집을 열심히 읽었어요. 사람이 너무 많고 짜증 나잖아요. 그런데 시집을 읽으면 시와 저, 오직 둘만의 세상인 거예요. 제가 살아나는 게 너무 잘 느껴져요.

고은  기독교 동아리가 샬롬 님을 살렸다고도 하셨잖아요. 나를 살려주는 걸 찾아내는 능력이 뛰어나시네요! 시는 읽는 게 더 좋으세요, 쓰는 게 더 좋으세요?

샬롬  쓰는 게 더 좋아요. 물론 시를 쓰는 당시에는 고통스러운 경우가 많아요. 왜냐면 마감이 있잖아요. 다 못 쓰겠고, 이게 제대로 쓴 건지 헛소리를 쓴 건지 모르겠고⋯. 그런데 쓰고 나면 너무 좋아요. 구체적인 언어로 말하긴 어렵지만, 그것 또한 저를 살리는 행위라고 많이 느끼고 있어요.

아르케를 만나다 

고은  아르케는 어떻게 오게 되셨나요?

샬롬  아르케에서 활동을 한 게 없어서 머쓱하긴 한데요. 아젠다워커 프로필이 올라오는 걸 보면서 관심이 갔던 것 같아요. 이런 흥미로운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다, 되게 재밌어 보인다, 싶었어요. 또 신기했던 게, 사회운동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는 약간 특유의 좋지 않은 미감이 보이기도 하는데요. 아르케는 되게 쌈뽕한 디자인인 거예요. 그래서 되게 특이하다고 느껴졌어요.

좀 더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시간이 안 맞더라고요. 그런데 좋은 건 저는 이런 사람들이 너무 궁금했고, 또 아직도 궁금하거든요. 그런 사람들을 언제든 마음먹으면 만날 수 있는 창구가 생긴 게 좋아요. 삶의 레퍼런스를 수집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구나, 너무 과잉해서 노동하는 것도 세상이 만든 기준일 수 있겠구나, 싶어요.

고은  아르케에서 해보고 싶은 게 있으세요? 시 수업 열어봐도 좋지 않을까요?

샬롬  진짜요? 좋아요. 저 사실 그런 걸 너무 해보고 싶었어요. 제가 해봐도 되나, 그런 생각도 드는데요. 그래도 하게 된다면 저는 너무 영광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