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아르케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젠다워커를 소개합니다.
아젠다워커는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고민을 갖고 있는지,

또 아르케에서는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나눕니다.

아르케 멤버이자 『어쩌다 유교걸』, 『함께 살 수 있을까』를 쓴 작가이자 인터뷰어인
고은(@goeunk1m)이 아르케 멤버들을 인터뷰합니다.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 변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아젠다워커의 이야기가 궁금한가요?
월간 아젠다워커는 매월 넷째 주 금요일 아침 9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동그랑과 만나기로 한 곳은 경기도 외곽. 건네받은 주소에 도착하니 ‘자립하는 소농학교’라고 적힌 목간판이 보인다. 길게 난 밭을 따라 길이 나 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밭에는 옥수수와 목화가 자라고 있단다. 혼자 높게 자라서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는 이는 수수다. 밭 맞은편으로는 마을에서 ‘커먼즈’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비닐하우스가 한 채 있다. 인터뷰 시간에 앞서 일찍 도착한 동그랑은 화병에 작은 꽃을 담고, 접시에는 포도와 초코 브라우니를 내어두었다. 동그랑의 옆자리는 그의 새로운 식구 밭고랑 차지다.

그는 현재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발행하는 ‘귀농통문’ 편집장을 하고 있다. 이 공간에서 진행하는 ‘자립하는 소농학교’ 역시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운영한다. 개신교 동아리 간사로 일하다가, 문화기획자도 되었다가, 지금은 생태와 커먼즈에 관심을 갖는 대학원생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보다 깊은 뿌리에는 ‘돌봄’이라는 의제가 있다. 일찍이 아버지를 돌보기 시작한 경험이 그를 이곳으로 데려다주었다.

가족 돌봄 청년 당사자 

고은  아르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는 동그랑 님의 소개 글을 읽으면서,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돌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돌봄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동그랑  아버지께서 형틀목수로 오랫동안 일을 하셨는데요. 8년 전인 2016년에 일하시다가 떨어지셔서 머리를 크게 다치셔서 장애인이 되셨어요. 사망할 수도 있다고 할만큼 뇌출혈이 심하셨죠. 그런데 불행 중 다행으로 산업재해 인정을 받으셨거든요. 다행이라고 말하는 건 당시에 경제적으로 병원비를 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병원비와 장애연금이 나왔죠.

어머니가 안 계시고 동생은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어요. 집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살 수 있는 형편이 안 되었기 때문에, 위급한 시기를 넘겨서는 요양병원에 입원하셨어요. 간병인을 고용했는데, 그분이 격주 주말마다 휴가를 가시거든요. 그럴 때 제가 아버지 병원 근처로 이사를 오면서 아버지를 돌봤어요.

체위를 변경하고, 기저귀도 갈아드리고, 식사도 떠드려야 해요. 이런 걸 아버지를 돌보면서 처음 해보게 됐어요. 간병사님에게 배우면서 했죠. 해보지 않았던 걸 하는 게 되게 어려웠고 또 한편으로 힘들었는데, 그러면서 돌봄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고은  아버지가 다치신 뒤로 계신 곳으로 이사를 가시고, 돌봄을 시작하면서 삶에 큰 변화가 생기셨을 것 같아요.

동그랑  중간중간에 또 아버지의 상태가 악화돼서 위급해지고, 그랬다가 다시 좋아지고 그런 시간들이 있었거든요. 그럴 때마다 불안함을 가지고 큰 병원을 왔다 갔다 했어요. 안정적으로 일을 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하기도 했죠.

아버지가 머리를 다치셨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거든요. 인지장애가 있으세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가끔은 본인의 욕구를 투명하게 말씀하실 때가 있어요. 집에 가고 싶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부채감이 생겼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이라도 시골집으로 모시고 가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요.

아버지 고향이 순천이시거든요. 완전 깡시골인데, 김포에서 순천까지 가기는 좀 어렵잖아요. 그렇다면 내가 먼저 지역으로 이주하고 자리를 잡아서 아버지를 가까운 병원으로 모시고, 주말이나 명절 때 시골 고향집에 다녀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고은  돌봄과 관련해서 프로젝트 작업을 해오신 것도 있으신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떤 작업을 하셨는지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동그랑  『돌봄을 돌아봄』이라고 제가 아버지를 돌봤던 경험들과 돌봄 노동을 하시는 여성 노동자분들의 구술생애를 담은 책을 냈어요. 또 돌봄을 주제로 공동 저자가 되어 함께 책을 쓰기도 했는데요, 저는 아버지를 돌봤던 경험을 담았죠.

‘돌봄과 애도 연습’이라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조기현 작가라고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쓴 영케어러 당사자인데요. 제가 페이스북에 『돌봄을 돌아봄』 작업 근황을 올리는 와중에 조기현 작가에게 메신저로 연락이 왔어요. 저는 당시만 해도 영케어러 당사자라는 인식은 없었거든요. 그런데 조기현 작가의 책을 보고 나도 영케어러였구나, 가족 돌봄 청년이었구나 알게 됐어요.

그렇게 조기현 작가를 만났는데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많이 공감했어요. 그냥 단순한 수다가 아니었죠. 내 또래 중에도 나처럼 가족을 돌보는 청년이 있구나, 알게 되고는 반가움 감정과 해방감이 들었어요. ‘나 혼자만이 아니구나.’ 사실 고립된 감정이 굉장히 크거든요. 왜냐하면 제 또래 중에 돌봄 경험을 이야기하는 관계가 별로 없거든요.

그 친구는 영케어러, 가족 돌봄 청년 당사자들끼리 자조모임,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어했어요. 제게도 그런 욕구가 있었죠. 그래서 서로에게 동료가 생겼다고 생각하며 모임을 이어가게 됐어요. 한두 명이 더 모이면서 ’돌봄 청년 커뮤니티 n인분‘을 만들게 됐고요. 저는 처음에는 활동가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구성원으로 함께하고 있어요.

고은  ‘돌봄 청년 커뮤니티 n인분’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동그랑  몇 년 전에 아버지가 낙상해서 골반 뼈가 부러지신 적이 있어요. 당시 간병사님이 침상에서 휠체어로 옮기는 와중에 그렇게 된 거예요. 수술하고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는데, 의사가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말을 했어요. 겁을 먹었죠.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면 나는 어떻게 아버지를 애도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불현듯 떠 올랐어요. 그냥 삼일장을 치르면 되는 걸까. 그런 이야기를 자조모임에서 나눴는데요.

돌봄이 처음이었던 것처럼 애도도 처음일 수 있잖아요. 가족 돌봄 청년 당사자에게 덜컥 마주하게 되는 돌봄과 애도의 순간을 완충해 줄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그런 고민을 나누고 애도를 함께 연습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 말에 공명이 일어나서 ‘돌봄과 애도 연습’을 기획했어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강의와 워크숍을 진행하던 그 시기에 이태원 참사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개인의 이별, 개인의 애도를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로 시작했는데요. 참여자들 신청서에 이태원 참사 이야기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기획자로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태원 참사로 희생됐던 희생자분들을 애도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어요. 마음이 아프면서 동시에 필요하기도 했던 시간이죠.

문화기획이 삶의 질을 높인다

고은  아버지가 다치시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

동그랑  대학생 때는 개신교 선교단체 동아리 활동을 적극적으로 했어요. 학부 생활보다 더 열심히 할 정도였죠. 졸업하고 나서는 그 동아리에서 간사로 일했어요. 가난하고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같이 생활하던 간사들과의 끈끈함과 신앙심으로 열심히 했죠. 그런데 3년 차 정도 되니까 이렇게 살긴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고, 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더라고요. 저의 종교적인 관점도 많이 바뀌기도 했고, 아버지도 다치시면서 간사를 그만뒀어요.

아버지를 돌보면서는 이것저것 많이 배웠어요. 배우는 걸 좋아하거든요. ‘피스모모’라는 단체에서 평화교육 과정을 배우고, 또 문화기획도 배웠어요. 수원 경기상상캠퍼스에 있었던 ‘다사리 문화기획학교’에서요. 거기서 옆지기와 만나서 결혼을 했어요. 옆지기가 그림 그리는 작가에요. 문화기획을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같이 혼인 잔치를 기획했죠.

시인 동료를 섭외해서 축시를 부탁하고, 문화예술교육하는 친구에게 사회를 부탁하고, 브라질 타악기 연주하는 팀에게 행진을 부탁했어요. 같이 춤추면서 입장했죠. 물론 그 과정에서 의견 충돌도 있었고, 감정적으로 상하는 것도 있었지만 우리가 그려왔던 혼인 잔치를 주체적으로 할 수 있었어요.

고은  동료들과 함께 혼인 잔치를 꾸렸다니, 너무 즐거웠을 것 같아요. 문화기획에 관심이 많으셨나 봐요.

동그랑  간사 일을 그만두고는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사회적 협동조합과 청년협동조합에서 일을 했는데요. 그러면서도 동시에 옆기지와 함께 지원 사업으로 우리가 하고 싶었던 프로젝트를 계속 했어요. 그러면서 N잡러가 됐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아버지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반상근으로 일을 시작한 거였는데요. 아버지 돌봄의 비중이 좀 줄면서 남는 시간에 프로젝트를 하게 됐어요. 그렇다고 수익이 2배, 3배가 되지는 않았지만요. 수익과 별개로 내가 하고 싶었던 문화기획을 꾸준히 할 수 있었어요. 그게 지금까지도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하나의 장치가 됐죠.

물론 조바심은 좀 나는 것 같아요. 대한민국 평균 가계 수준, 커리어, 삶의 규모를 보면 고립감이 들고 박탈감이 들기도 해요.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내 꿈에 취했던 게 아닐까.

고은  제가 한 일이 사회적으로는 크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런 조바심이 저에게도 있는 것 같아요. 그간 어떤 프로젝트를 해오셨는지 궁금해요.

동그랑  여기 자료집이 있는데요.

고은  와, 엄청 많네요!

동그랑  커먼즈와 생태에 관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기도 했어요. 수원에 공군 비행장이 있는데, 거기가 이전한다는 소문이 있어요. 거의 10년 넘게 소문이 있긴 했지만, 그 시기가 앞당겨진다는 소식이 들렸어요. 그러면서 비행장이 아니게 될 그 공간을 상상하게 된 거죠. ‘멈추면 생동’이라는 공공예술 프로젝트였고, 여러 작가들이 서로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저와 옆지기도 참여했고요.

공군 비행장의 활주로는 아스팔트라는 물성을 갖고 있잖아요. ‘만약 활주로에 풀이 난다면?’하는 상상을 해봤어요. ‘멈추면 생동’을 진행했던 탑동 시민농장 진입로도 아스팔트로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아스팔트에 씨앗을 심었죠. 아스팔트를 보면 균열들이 나 있잖아요. ‘재야생화’라는 개념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제가 수원화성행궁 복원 사업 현장에서 일을 했었는데, 거기서 인상 깊게 본 장면이 있어요. 한참 토목공사를 진행하다 혹서기, 장마철, 설계변경 등의 이유로 공사 중지 기간이 길어졌어요. 그런데 공사가 멈춘 그 너른 현장에 생명들이 막 자라나는 거예요. 그 과정을 생물학에서는 ‘천이’라고 하는데요. 처음에는 키가 작은 잡초가 돋아났다면,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니 관목들이 자랐어요. 저는 그 과정까지 봤지만, 공사가 중지되고 그대로 놔뒀다면 더 큰 나무들도 자랐겠죠.

공군 비행장도 가만히 놔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어떤 모습이 될까, 생각했을 때 천이가 떠 올랐어요. 아스팔트의 틈바구니에서 돋아나는 잡초와 관목들, 더 나아가서는 나무와 그를 먹이로 하는 소동물과 분해자들도 생겨나겠죠. 그래서 잡초의 씨앗을 채종해서 심어보는 퍼포먼스를 했어요.

미약한 돌봄, 무성한 생명

고은  지금은 농사를 짓고 계시기도 하잖아요. 언제 농사를 시작하셨어요?

동그랑  농사는 3년 전에 처음 배웠어요. 귀농운동본부에서 하는 ‘자립하는 소농학교’에서 1년 과정을 들었죠. 매주 토요일마다 왔어요. 소농학교가 끝날 때쯤 백수가 됐는데, 마침 당시 소농학교 활동가가 저에게 일을 물려주겠다고 제안했어요. 고민을 하다가 집도 가깝고, 지역에 이주할 생각이 있으니까 도움이 되겠다는 기대감으로 작년 한 해 동안 활동가로 일했죠.

그런데 1년 동안 일하면서 너무 힘든 거예요.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본부의 상황과 더불어서 생각해 보면 계속하기가 어렵겠다는 판단을 했죠. 그런데 본부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가면 좋겠다고 해주셨고, 저도 당장 다른 일자리를 구하는 것보다는 지역으로 이주하기 전까지는 다른 역할로 일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올해는 귀농운동본부의 홍보 일과 「귀농통문」 편집장을 맡고 있어요.

고은  동그랑 님 만나러 오는 길에 ‘자립하는 소농학교’ 푯말을 봤어요. 저희가 만나고 있는 이 공간은 어떤 공간인가요?

동그랑  이 부지가 사유지도 아니고 국유지도 아니거든요. 문화유산국민신탁이라는 제도가 있어요. 이 지역은 한 가문이 오랫동안 유지로 자리 잡고 있던 곳인데요. 그 가문에서 조선시대 때 꽤 넓은 부지를 하사받았대요. 계속 농지로 활용이 되다가, 지금의 후손분이 부지의 일부분을 전통 농업을 배울 수 있는 곳으로 기증을 하셨어요. 그분이 ‘자립하는 소농학교’를 만드셨죠.

그러니까 여기는 커먼즈인 거죠. 이곳의 주체들이 ‘커먼즈’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커먼즈로 활용하고 있어요. 거의 마을의 공유지 같은 곳이에요. 마을에서 농사짓는 분들이 와서 점심도 드시고, 주말에 막걸리도 한잔하러 오세요. 정기적으로, 비정기적으로 모임들이 일어나기도 하고요. 먹고 마시고, 놀고 수다 떠는 공간이죠. 또 땀 흘려서 같이 노동하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저도 계절마다 와서 농사도 짓고 산책도 하고 있어요.

청소, 요리, 관리도 그렇고요. 운영 규칙들을 만들어서 활용하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 돌봄의 현장이기도 하죠. 게다가 흙과 작물을 돌보는 현장이기도 하거든요. 기존 관행농법처럼 비닐로 멀칭을 하지 않아요.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되도록 기계도 쓰지 않고요. 주로 손이나 호미, 낫 같은 걸로 농사를 짓죠. 제가 관심 있는 돌봄과 생태, 커먼즈가 실제로 일어나는 곳이에요. 여기 있는 동안은 이 현장을 주제로 글을 써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고은  돌봄이라는 키워드와 생태라는 키워드의 거리가 먼 것 같으면서도 가까운 것 같기도 해요. 동그랑 님은 돌봄과 생태라는 키워드는 언제 교차된다고 느끼실지 궁금해요.

동그랑  농사를 지을 때인 것 같아요. 어설프지만 풀을 매고, 호미로 흙을 파서 씨앗을 심고, 그게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 너무 신기해요. 제가 돌봤다고 말하긴 하지만, 그 돌봄은 굉장히 미약하거든요. 제가 예상하지 않았던 생명들을 발견하게 돼요. 개구리, 두꺼비, 메뚜기, 무당벌레, 때로는 농부들에게 해충이라 불리는 생명들까지도요. 내가 부르지 않은 생명들이 오손도손 모여서 살아가는 걸 보게 되죠. 때론 서로 먹고 먹히기도 하면서요. 그렇게 보면 결국 생명과 죽음도 ‘돌봄’으로 이어져 있는 것도 같아요.

또 장마철에 풀을 못 베거나 이곳에 잘 못 오게 될 때가 있어요. 최근에도 장마 지나고 왔는데 풀이 굉장히 무성해진 거예요. 거기에 뭐가 있을지 모르는 거거든요. 가만히 놔둬도 무성해지는데, 거기를 터전 삼아 살아가는 생명들은 누가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고은  앞으로도 활동가 일을 계속하실 생각인가요?

동그랑  아직 고민하는 시기에요. 활동가가 의미 있는 직업이지만,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당장 활동가 급여로 생계를 이어가기엔 어렵고. 그래서 요즘엔 이 일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지금까지의 경험들이 제게 의미 있게 자리 잡은 건 뭐랄까요? 돈으로 거래되지 않는 관계, 특별한 매개가 없어도 맺을 수 있는 관계를 배웠던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관계 맺을 수 있는 게 제 삶의 다채로운 이력이었던 것 같아요.

종종 힘들 때가 있거든요. 아버지가 위급할 때나,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때나, 감정적으로 굉장히 의기소침하고 고립감을 느꼈을 때요. 그런 순간에 제가 관계 맺어왔던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얻었던 것 같아요. 그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그 위기를 잘 극복하지 못했겠다, 싶어요.

아르케를 만나다

고은  아르케는 어떻게 오게 되셨나요?

동그랑  활동가, 농부, 작가, 문화기획자, 제작자 등 말은 'n잡러'라고 하지만 아직도 스스로를 정리하지 못 할 때가 있어요. 내가 누구인지는 물론이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 것인지 과연 이대로 살아갈 수 있을지도요. 그러다 인스타그램이라도 볼라치면 더 우울해 질 때가 많아요. 뭔가 더 해야할 것 같고, 셀프 어필이니 퍼스널 브랜딩이니 자기관리하지 않으면 실패할 것만 같은 우울과 불안에, 피로감까지. 그런데 이 고민은 저만 하는 고민은 아닐 것 같아요. 아르케 멤버가 되어 그런 고민을 나누고 싶었어요. 나아가 자기관리 아닌 '자기돌봄'으로, 경쟁 아닌 '돌봄과 호혜'로 서로 존중하고 지지하는 관계를 기대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