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아르케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젠다워커를 소개합니다.
아젠다워커는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고민을 갖고 있는지,

또 아르케에서는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나눕니다.

월간 아젠다워커 9호와 10호는 이틀에 걸쳐 특별호로 연재됩니다!

: 이번 특별호에는 지난 2024 상반기 시즌 진행된 클럽 <커뮤니티 인터뷰 워크숍>를 통해 엮어낸 아르케 멤버들의 인터뷰를 담습니다.

<커뮤니티 인터뷰 워크숍>은 월간 아젠다워커를 연재하고 있는 고은이 클럽장인 클럽으로, 아르케 멤버들이 서로 짝을 이뤄 상호 인터뷰를 진행하며 서로에 대해 깊이 알아가고, 인터뷰라는 방법론에 대해 함께 배웁니다. 고은의 제안으로 클럽에서 만들어진 좋은 이야기를 월간 아젠다워커를 통해 소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전과 부산, '비수도권 지역'에서 '활동가'라는 직업적 정체성을 갖고 사회 변화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신서리, 유진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 변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아젠다워커의 이야기가 궁금한가요?
월간 아젠다워커는 매월 넷째 주 금요일 아침 9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지역에서 활동하다 보면 가끔 세상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비슷한 활동을 하는 것 같은데, 왜 매번 서울만 언급되는 건지. 이럴 때 우리 옆에서 누군가 우리 모습을 기록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부산에는 이런 현장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을 미디어가 필요한 현장에서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미디어활동가, 유진 님. 엄청난 활동을 하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는 유진 님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신서리  안녕하세요, 유진 님. 대전까지 와주셔서 감사해요. 웰컴데이 이후 오랜만에 뵙네요.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한데, 혹시 하루 루틴이 어떻게 되시나요?

유진  일단 노동시간은 8시간이에요. 9시 반부터 6시 반까지. 그렇게 노동을 하고요. 저녁 시간엔 거의 자기계발에 몰두하는 편이에요. 운동을 하거나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요. 감정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요.

신서리  오, 감정 일기를 쓰시는군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유진  저는 영상을 만드는 일을 하잖아요. 만들기 위해선 또 수많은 영상들을 참고하고요. 그러다 보니 글보다는 이미지로, 게다가 편집을 통해서 표현하니까 명확한 문장이 잘 안 생기더라고요. 무수한 이미지들이 나를 통과하는데, 그게 나한테 남기는 게 뭔지 잘 정리하고 해소할 건 해소해야겠다, 그게 필요하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감정 일기를 쓰게 됐어요.

신서리  그러면 기록을 매일 매일 하세요?

유진  매일매일 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네. (웃음)

신서리  네, 알겠습니다. 빠르게 넘어갈게요. 유진 님은 부산에 있는 미디토리에서 7년째 ‘미디어활동가’로 일하고 계신데요. 다른 분들에겐 미디어활동가란 말이 생소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유진 님은 어떻게 정의하고 계신가요?

유진  미디어가 필요한 현장에서 기록하는 사람. 노사갈등을 예로 들면, 언론은 대부분 사측에게만 마이크를 쥐어주잖아요. 이럴 때 저희는 주로 노동자의 목소리를 많이 듣는 편이에요. 그래서인지 노동조합 투쟁 현장에 자주 가요.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인 풍산 마이크로텍지회가 있는데요. 이분들이 되게 오래, 12년간 투쟁을 해오셨다고 해요. 시청 앞에서 천막을 치고 계속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어요. 저희는 그 천막을 배경으로 한 짧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요.

‘라디오’로도 현장을 담고 있는데요. 부산 MBC <라디오 시민세상>이에요. 프로그램 자체가 열린 청취자 참여 프로그램이라, 방송사 개입 없이 시민들이 방송을 만들어 가는 형태예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노동자분들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하고 있죠. 어떤 투쟁 현장이 있다면, 그분들을 초대해서 당사자 입장에서 이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게요.

신서리  정말로 마이크를 쥐여주는 역할을 하시네요.

유진  최근에는 마트 노동자분들이 참여하셔서 대기업 위주의 발전에만 초점을 두지 말고 노동자의 건강권이나 행복권도 신경을 써달라는 목소리를 내셨어요. 서면시장 내 상인회에서 일하는 사무직 노동자분들이 투쟁하는 이야기도 하러 오셨고요.

신서리  웰컴데이에서 만났을 때도, 슬랙 자기소개에도 유진 님이 계속해서 미디어활동가라고 소개하셨잖아요. 들으면서 저는 이게 어떤 ‘다짐’으로 들렸는데요. 어떠신가요?

유진  정확히 그런 감정에서 하는 말이 맞아요. 잊지 않으려는 마음에서요. 사실 올해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나 고민을 많이 겪고 있어요. 내가 확실히 활동가로서 살 건지, 아니면 그냥 직업인으로 살아갈 건지 선택하는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에요.

신서리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곧 오는 건가요? 아니면 이미 온 건가요?          

유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왔죠. 조직에선 지금까지 이런 사회참여적인 활동을 사회적 기업이라는 옷을 입고 해왔는데요. 이 방식이 되게 무겁고 힘들다고 하는 조직원들이 생긴 거예요. 그걸 벗어던지고 그냥 자유롭게 시민사회랑 연대해서 작업하는 방향으로 가자는 논의가 시작됐어요. 저는 사실 약간 그런 틀이 있어야만 이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 틀을 벗어나면 제 정체성도 흐려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내부에서 이런 이야기를 더 본격적으로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이게 안 될 시엔 주류에 맞춰서 저도 좀 더 먹고 사는 문제에 에너지와 시간을 쓰는 직업인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아니라면 조직을 떠나거나.

신서리  지금 격동기를 겪고 계신 거네요. 고민이 많으시겠어요, 조직과 유진님 모두.

유진  그래서 조직에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각자 하나씩 하고 있는데요. 서로 방향이나 생각이 다르니까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나가 보자, 이런 차원에서요. 저는 부산의 반빈곤센터라고, 빈곤 문제를 이야기하는 시민단체와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제가 직접 센터에 가서 미팅을 했고, 미디어 제작을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신서리  일종의 실험이네요. 어떤 작업을 하시는 건가요?

유진  빈곤 문제를 이야기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30대 여성부터 휠체어 장애인 여성, 그리고 공영 장례 문제를 이야기하는 사람 등 다각도에서 빈곤 상황을 이야기하는 콘텐츠예요.

신서리  제가 대전에서 여담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여담에서 초반에 한 인터뷰 작업이 유진 님이 하고 계신 ‘미디어 활동’의 일환이었다고 생각해요. 이런 제 경험에 비추어볼 때, 지역 미디어 활동은 매우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 것 같아요. 정말 주목받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유진 님은 활동하면서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유진  일단 실패의 경험이 많아요. 지역의 이야기를 하다가 실패하는 경험이 많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한번은 <부산탐구생활>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영상을 올렸어요. 

신서리  (함께 채널을 보며) 그래도 채널 구독자가 꽤 있는데요?

유진  직접 주변에 영업도 해본 결과, 2천 명 넘긴 했어요. 그런데 이 과정이 너무 지난했고 한 2년 넘게 해본 건데도 이 정도 성과인 거예요. 진짜 주목받기 힘들구나 생각했죠. 뭔가 돌을 던지는데 아무 반응이 없는 호숫가에 던지는 느낌이라고 해야되나. 아니면 산에서 메아리를 “야호” 외쳤는데 돌아오는 반응이 없다거나. 그런 느낌이에요.

신서리  그러게요. 사실 수도권의 콘텐츠는 반응이 좀 있을 거잖아요. '야호' 하면 '야호' 해주고. 지역 사람들은 그런 경험을 할 새도 없이 계속 실패하는 것 같아요.

유진  실제로 콘텐츠에서 주제가 달랐냐, 아니면 우리가 미흡했냐 하면 또 그건 아니에요. 사실은 다 비슷한 말을 하고 있는데. 영상이란 건 누가 봐줘야 의미가 생기는 거라서 그런 면에서 아쉽죠. 그래도 유튜브 시대가 열리면서 자기 이야기하는 채널이 많아졌잖아요. 시각장애인이나 희귀 질병을 앓고 있는 분 등등. 사회에서 소수였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주목받을 수 있다는 것에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신서리  고군분투하시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으시네요. 정말 활동가다워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렇게 열심히 기록하는 유진 님의 기록은 누가 기록해 주는지 궁금해요.

유진  저도 계속 반복되는 작업을 하면서 이 속에 나는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가 그런 고민을 종종 하게 돼요. 근데 오래 이 일을 해보다 보니까 느낀 게, 그냥 이 작업물 자체가 나구나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이 영상은 왜 나오게 된 거지’ 그리고 ‘기획이 어디서부터 시작됐지’ 그런 걸 좀 생각하게 되고. 결국에는 나의 이야기로부터 나오는 거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이걸 활동하는 초반에는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진짜 기록자로서만, 그냥 카메라로서 존재하는. 그냥 내가 이 현장을 담는 것만 해도 의미가 있다. 그럼 이제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나는 어디 있는가.’에 대해.

올해 반빈곤센터랑 하는 작업도 제가 30대에 접어들면서 빈곤한 상황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서 하게 됐어요. 사회적으로 봤을 때 제일 성취를 많이 하는 시기인데 저는 남들이 성취하고 있는 인간관계라든지 경제적인 문제라든지 집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정도로 충족되지 못했거든요. 그리고 영영 그럴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가끔 해요. 활동가니까.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다양한 빈곤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내가 느끼는 이 감각 외에도 있을 거다. 그걸 한번 발견해보자. 그렇게 오로지 제 시선에서 시작이 된 거죠.

근데 이렇게 작업해 본 적이 처음이에요. 보통 이미 현장이 있고 거기에 가서 내 역할을 하는 정도였는데, 온전히 제가 이끌어 보는 게.

신서리  저는 유진 님이 성장한 결과 같기도 해요. 대부분 처음 일을 시작하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모르잖아요. 주어진 일 수습하기도 바쁘지. 그래서 유진 님이 어떤 ‘시야’를 가지고 작업할 수 있었던 건 결국 카메라로서 존재했던 유진 님이 있어서 그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유진 사실 22년 성매매처벌법개정연대 기록 현장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2022년에 성매매처벌법 개정을 요구하면서 활동가들이 전국 행진을 했는데요. 제가 그걸 영상으로 기록하는 걸 맡았어요. 그러면서 ‘이 현장에서 내가 카메라로 존재할 것인가’ 아니면 ‘한 명의 또 다른 사회문제 당사자로 존재할 것이냐’ 그것도 아니면 ‘이런 모든 걸 표현해내는 창작자가 될 것이냐’ 이런 고민을 많이 했죠.

신서리  고민의 결과는 뭐였나요?

유진  사실 다 교차되었던 것 같아요. 성매매집결지를 걸어 다니는 동안엔 저도 이런 성산업 구조가 우리 사회에선 이제 정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함께했던 것 같고. 여성 활동가들이 대전역 앞에서 시위할 땐 그걸 철저하게 기록하려는 카메라였고요. 다 섞여 있어요. 그런데 꼭 마지막 장면에서는 제 시각, 제 한 줄이 들어가는 것 같아요. 영상의 엔딩컷이라는 게 결국 편집자 의도가 들어갈 수밖에 없더라고요.

유진  (영상을 함께 보며) 이게 마지막 장면인데요. 활동가들이 전국을 돌면서 숙소에서 틈틈이 연습을 해서 노래에 맞춰 춤을 춰요. 다들 막 즐겁게 춤을 추는데, 눈에는 자꾸 눈물이 보이는 거예요. 이걸 보면서 결국에는 이 활동가들이 그냥 온몸으로 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구나, 이런 걸 알 수 있었어요. 자기의 표현을 온몸으로 해내는 사람들을 관찰했던 그 순간이 마지막 장면이었죠. 이 작업 이후에 제가 활동가의 삶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게 됐던 것 같아요. 활동가로 사는 삶은 어떤 삶일까 상상을 좀 하기 시작했어요.

신서리  유진 님도 활동가시잖아요. (웃음)

유진  저는 좀 애매한 위치에 있죠. 활동가, 기록자, 창작자 그사이 어딘가에.

신서리  아까 말한 정체성 혼란 같네요. 그럼 이런 혼란이 오면 어떻게 하세요?

유진  저는 관계 지향적인 편이라 동료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럴 기회가 많이 없어요. 그래서 회식 문화를 부활시켜 보자는 생각인데. 2달에 한 번이라도 이른 저녁을 먹으면서 이번 주에 있었던 일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그리고 조직에 10년 이상 활동하고 있는 선배가 꽤 많거든요. 그분들 존재 자체가 힘이 많이 되어요. 특히 이런 영상 제작 현장엔 여성, 나이 든 여성이 잘 안 보이는데요. 존재 자체로 제 미래의 어떤 표본이 되니까 너무 힘이 되죠.

신서리  다행이네요. 유진 님 옆에 멋진 분들이 많아서. 같은 일을 하는 동료와 선배들이 힘을 줄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인 것 같아요.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인터뷰한 소감을 나눠주실 수 있나요?

유진  '기록하는 사람은 누가 기록하지?'라고 이렇게 문제의식을 던져줘서 되게 고마웠고요. 저도 제 표현을 내가 어떻게 해야 될까 고민하면서, 지금 많이 배워나가고 있는 와중이라 더 위로가 됐던 것 같아요. 확실히 내가 지금 하는 일을 더 오래 하기 위해서는 내가 편한 표현 방식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게 영상 작업을 통해서든, 정치적 활동을 통해서든, 일상에서든. 그런 게 되게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물음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신서리  저도 긴 시간 함께해주신 유진 님께 감사해요. 대전까지 와주셔서 더 감사하고요.